[기억할 오늘] 11.8
1990년 11월 8일 아일랜드의 법학자 출신 정치인 메리 로빈슨(Mary Robinson)이 아일랜드 첫 여성 대통령에 당선됐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노동당의 지지를 받으며 선거를 치른 그는 결선 투표에서 51.9% 지지율로 당선됐다.
그 해 12월 3일 취임한 그는 재임 7년 동안 연평균 9.9%의 경이로운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며 1인당 국민소득을 1만 달러 남짓에서 3만 달러 수준으로 성장시켰다. ‘아일랜드의 기적’이라고도 불리는 저 경제적 진전은, 동구권 민주화 이후의 신자유주의 호황과 더불어 정치적 안정과 인권ㆍ자유의 획기적 성장 속에 이룬 거여서 의미가 컸다.
유럽의 가장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로 꼽히는 아일랜드에서 여성이 국가 수반이 된 사실 자체가 획기적이었다. 로빈슨은 더 나아가 95년 국민투표를 통해 아일랜드 여성의 숙원이던 이혼을 합법화했고, 동성애를 불법화하고 있던 법을 개정했다. 아일랜드가 지난 해 동성혼 법제화를 국민투표로 가결한 최초의 국가가 된 데는 그의 공이 컸다. 비록 부결되긴 했지만 그는 낙태 합법화 국민투표(92년)를 실시하기도 했다. 분쟁지역 북아일랜드를 네 차례 방문하며 신페인당 당수 등 파벌 지도자들을 만났고, 우려와 반발에도 불구하고 영국 여왕도 만났다. 내전 직후 소말리아의 기근과 르완다의 인종말살 전쟁을 국제사회에 알리며 근절 노력을 촉구하는 데 가장 앞장 선 국제 정치인이기도 했다.
1944년 5월 21일 의사 부모의 외딸(4남1녀)로 태어난 그는 전통적 보수주의에 치이며 성장했고, 법률가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법과 인권을 공부했다고 한다. 트리니티 칼리지와 하버드에서 유학한 그는 25세이던 69년 트리니티 칼리지 최연소 교수가 됐고, 그 해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여성 배심원권 획득, 기혼여성 공직 유지권 획득…. 선거 직후 “나의 당선은 여성 유권자들이 요람 대신 낡은 체제를 흔들어 갈아치운 결과”라고 말했던 그의 임기말 지지율은 97%에 달했다. 종신 대통령을 해달라는 농반진반 청을 뿌리친 채 그는 임기를 석 달 여 남겨두고 사임,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이 됐다. 지금은 더블린대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2년 12월 대선서 박근혜 후보가 51.6%로 당선되자 그를 메리 로빈슨에 비유하며 ‘덕담’한 이들이 있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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