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박성현(23)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진출을 선언했다. 그 동안 많은 국내 골프 팬들이 기대했던 미국 진출이고, 기자 개인적으로도 에리야 쭈타누깐(21ㆍ태국) 등 LPGA를 대표하는 장타자들과의 호쾌한 장타 대결을 볼 수 있게 돼 그의 새로운 도전에 축하와 응원을 보낸다.
하지만 뒷맛이 조금은 개운치가 않다. 당초 박성현은 11일부터 13일까지 열리는 올 시즌 마지막 정규대회 ADT캡스 챔피언십에 참가 신청을 마쳤다. 박성현 스스로도 1점차로 뒤지고 있던 고진영(21ㆍ넵스)과의 대상 경쟁에 욕심을 보였다. 그랬던 박성현은 세마스포츠마케팅과의 매니지먼트 계약 직후인 지난 1일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에 돌연 ADT캡스 챔피언십 출전 포기 의사를 통보했다. 고진영과의 대상 경쟁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대회 출전 포기에 대해 매니지먼트사인 세마측은 “박성현이 영어 구사에 걱정이 많아 하루라도 빨리 현지에서 영어 교육을 받기 위해 출국을 서둘렀다. 내년 1월 19일 LPGA 오리엔테이션 참가에 따라 스케줄을 역산해보니 늦어도 다음주에는 출국을 해야 할 것 같아 출전을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박성현측의 해명에는 올 한해 그의 플레이에 열광했던 수많은 팬들에 대한 배려는 담겨있지 않다. 사실 이번 시즌 후 박성현의 LPGA 진출은 예견됐던 일이다. 발표 시기를 언제로 잡느냐만이 남아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팬들 역시 박성현의 LPGA 진출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해왔다. 그렇지만 대상 경쟁이 한창인 가운데 시즌 마지막 대회를 앞두고 출전을 포기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KLPGA 대회 주관 방송사인 SBS골프마저도 이 사실을 통보 받지 못해 ‘팬텀 클래식 with YTN’ 중계 방송 도중 박성현의 ADT캡스 챔피언십에 대한 전망을 내놓기까지 했다. 박성현 팬들은 그의 국내 고별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
KLPGA 성공을 바탕으로 올 시즌 LPGA 진출한 전인지(22ㆍ하이트진로) 역시 지난해 시즌 마지막 대회를 불참했다. 하지만 전인지의 대회 불참 모양새는 박성현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대회 출전 신청을 했던 전인지는 어깨 부상을 이유로 불참의사를 밝혔지만 예정된 프로암 대회까지 모두 소화하며 팬들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를 다했다.
올 시즌 내내 박성현은 미국과 프랑스, 일본 등을 오가며 30여개 대회를 참가하는 강행군을 벌여왔다. 그래서 그의 지나친 경기 출전에 “KLPGA가 잘못된 규정으로 선수의 혹사를 부추긴다”는 내용의 기사도 썼다. 하지만 박성현의 시즌 마지막 대회 불참 결정에 대해서는 ‘선수 보호 차원’으로만 포장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스포츠 스타는 팬들의 환호와 박수 갈채를 자양분 삼아 성장한다. 그런 점에서 박성현의 이번 대회 불참은 자신을 키워준 팬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가 없는 모양새다. KLPGA 투어를 마무리하는 박성현의 OB샷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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