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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이 공포로…콜롬비아 병원에서 겪은 일

입력
2016.11.0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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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배꼽이 근질근질하다. 누구에게나 한 시기를 기억하는 이유는 다를 것이다. 사귄 사람으로 인해 혹은 특유의 비릿한 냄새로부터, 때론 한 사건이 그때의 기억 속으로 휘감겨 들어가게도 한다. 그 해 이맘때쯤 난 수술을 했다. 물론 여행 중이었다. 기한이 없던 여행의 중간이었다.

조용히 할 테니까 의사 좀 만나게 해주세요.
조용히 할 테니까 의사 좀 만나게 해주세요.

택시는 병원 응급실로 성급하게 속력을 내고 있었다. 콜롬비아 북부 카르타헤나였다. 택시 안 20분. 1년 5개월간 무사 여행하던 나의 건강은 그곳에서 확실히 꺼져가고 있었다. 전날 걷지 못할 정도의 하복부 복통이 왔다. 난 택시의 미세한 진동에조차 자지러지는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래도 모든 것이 '빨리' 해결될 응급실로 가는 중이었다. 탕탕도, 나도 모든 게 잘될 거란 희망이 있었다.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Cartagena)는 밤마다 남미의 열정이 펄펄 끓는 카리브해의 올빼미 도시다.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Cartagena)는 밤마다 남미의 열정이 펄펄 끓는 카리브해의 올빼미 도시다.

응급실 경호원이 안내하는 대기 좌석에 앉았다. 일요일이어서인지 한산해 보였다. 내 앞의 머릿수를 세어보니, 내 차례가 3번째 쯤 되어 보였다. 그런데 그 누구도 내 앞 대기 환자를 찾는 기색이 없었다. 1시간, 2시간... 복통이 날 죽일 시간이 더해갔다. 실신 직전이었다. 여긴 응급실이 아닌가? 내 증세라도 먼저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땅에 드러누워 지랄을 떨어야 이 고통을 알아줄까? 아니다. 친히 밖으로 나가 차에 부딪혀 피가 흥건한 외상을 보여줘야 내 차례가 돌아올 것 같았다. 그 편이 지금의 고통을 잊게 할 유일한 방법이란 절박함도 있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똑순이 타입의 의사가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자신의 판단으로는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정확한 진찰을 위해 일단 금식하란다. 피를 3번 뽑고 수분을 공급하는 링거를 꼽았다. 이후 복도에 놓인, 딱 편의점 노상에나 있을 법한 의자에 안내되었다. 링거 봉지는 벽의 못에 걸렸다. 덥기도 오지게 더웠다. 카르타헤나의 열대성 사바나 기후에 환자의 체온까지 합세해 사우나 온도에 가까웠다. 체감으로도 '안습'의 상황. 이에 폭풍 눈물을 몰고 온 의사의 한마디(왜인지 그녀의 말은 반말로 기억된다).

스페인어로 ‘분(시간단위)’이란 뜻의 minutos. 시간은 약이 아니라 병이 될 때도 있다.
스페인어로 ‘분(시간단위)’이란 뜻의 minutos. 시간은 약이 아니라 병이 될 때도 있다.

"'다른 의사가 와서 널 정확히 진단할 거야. 음, 5시간 정도 기다리면 되겠네."

5분 아니고 5시간? 넌 의사 아니니? 돌팔이니? 당시 병원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6시, 기다리고 나니 오후 9시였다. 그녀의 말인즉, 새벽 2시경 정확한 병명을 알려줄 의사를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중남미 시간개념으로는 6~7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콜롬비아에 죽을 만큼 배 아픈 사람은 나 혼자인 것 같았다.

기다리는 사이, 다행히 사우나를 벗어나 휠체어에 끌려 다른 병동으로 옮겨졌다. 기쁜 일은 아니었다. 이젠 북극 날씨였다. 핫팬츠와 티셔츠 쪼가리 차림인 날 얼어 죽게 할 에어컨이 ‘풀 가동’ 중이었다. 그 와중에 내 배는 수시로 마루타가 되었다. 인턴과 레지던트, 신입의사 등에게 차례로 진단, 아니 학습 대상이 되었다. 물론 그들에게 난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지적 호기심의 상대였을 것이다. 보기 드문 동양인의 배라니! 꾹꾹 눌러보자. 오오오, 야간 근무의 횡재로구나! 탈진한 내 배는 새벽 3시 가까이 되어서야 진단 내릴 '의느님'을 만났다. 그.러.나.

"맹장염으로 의심이 되네요. 정확한 진단을 위해 오전 9시에 초음파 검사를 보고 판단합시다."

뭐라? 막장 병원 같았다. 맹장 터지고 구경할 기색이었다. 숙소로 돌아갔다가 내일 다시 오겠다고 했다. 그건 안 된단다. 밤새 상태를 봐야 하니 여기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이는 또 다른 생지옥이었다. 여기 응급실로 말할 것 같으면, 딱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 세트장이었다. 동공이 밖으로 튀어나온 환자, 칼에 복부를 찔린 환자, 다리에 총탄 구멍이 생긴 환자... 가짜 같은 피가 뚝뚝 바닥에 떠다녔다. 콜롬비아 사립 병원은 상담만 해도 30만원이 넘을 거란 숙소 주인 말에 겁먹고 달려온 대학 병원이었다. 이 야밤에 다른 병원의 대처가 빠를 거란 보장도 없었다. 졸지에 칼에 베인 상처와 총알 자국 사이에서 자야 하는 상태. 지푸라기라도 이 병원뿐이었다.

수술 전과 후. (스페인어) 문맹자의 설움은 대폭발 직전.
수술 전과 후. (스페인어) 문맹자의 설움은 대폭발 직전.

반수면 상태의 밤을 보냈다. 초음파 검사는 약속(중남미에서 가장 소용없는 단어)한 오전 9시를 간단히 넘겨 11시에나 받을 수 있었다. 검사를 마치고 동행한 인턴에게 물으니, 결과가 좋단다. “그럼 왜 아픈 건데?”라는 탕탕의 입을 막아버렸다. 때론 아파도 아무 일이 없을 거란 립 서비스는 위로가 된다. 이후 두 명의 인턴이 들이닥쳤다. 매니큐어를 지우란 명령이 떨어졌다.

TV드라마에서 이렇게 배웠다. 수술 전 카리스마 집도의가 "안타깝게도 당신은 맹장 수술을 해야 합니다. 간단한 수술에 속하니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그리고 위로의 표시로 어깨를 토닥토닥)."라고 한다는 걸. 나의 현실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검사 결과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맹장염이란 진단을 '얻어' 들었다. 진짜 응급환자 같았다. 난 순식간에 수동적이다. 탕탕을 포함해 4명이 달라붙어 매니큐어를 지웠고, 뒤 트임 수술복으로 갈아 입혀진 뒤 휠체어에 태워졌다. 처음 만난 초고속이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느리게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순간이었다.

(드라마에서 본대로) 당장 수술대 십자가에 누워 마취에 취해 꺼져갈 불빛을 상상했다. 단 한 번도 칼을 댄 적 없는 내 몸의 첫 시술. 한국도 아닌 콜롬비아에서라니, 어질어질했다. 그런데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 ‘끝까지 간다’의 시나리오에 맞먹었다. 난 수술실로 직행하는 대신 수술 대기자실로 갔다. 대기자 몇 명이 링거를 맞고 있었다. 나와 달리 기다리기 쉬운 '나일론' 환자 같았다. 3시간이 흘렀을까, 4시간은 되었을까. 고통과 함께 하얀 벽의 페인트 자국을 따라가던 시간들. 느림의 미학이란 이런 것일까. 수술이 두려웠던 내가 그 누구보다 수술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때 한 레지던트가 서류를 선보이며 사인하라고 했고, 난 그 서류(아마도 수술 동의서로 추정된다)에 뭐가 쓰여 있는지 단 1초도 못 보고 수술실로 직행했다.

수술 후 조기 퇴원했다. 갑갑해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아서였다. 숙소를 병원 삼아 누워있는 내내 난 중남미와 느림의 연관성에 대해 공상했다. 느림의 반전, 느림의 공포, 느림의 미학... 느림과 그 어떤 단어를 조합해도 어울릴 것 같았다. 이후 이곳에서 근무했던 독일 여의사로부터 이 ‘느림’ 사태에 대한 원인을 들을 수 있었다. 고백하건대, 병원 괴담을 겪은 후 난 느림의 방귀까지도 이해하는 느낌이었다. 진심이다.

강미승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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