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사과 후 후속대책 없이 침묵
광화문 20만 촛불 민심도 외면
정국 주도권 내려놓을 뜻 없어
"김병준 총리 후보마저 내주면
靑 힘 상실" 임명 강행에 무게
朴, 원로-종교지도자 면담 추진
영수회담 성사돼도 金 인준 위한
野 설득 기회로 삼을 가능성 높아
박근혜 대통령의 요즘 심경에 대해 청와대 참모들은 “다 내려놓았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진심’은 다른 것으로 보인다. 국정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당장의 2선 후퇴는 박 대통령의 선택지가 아닌 것이다. 5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을 밝힌 촛불 20만개의 ‘탄핵 민심’을 박 대통령이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이 4일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두 번째 대국민사과를 한 뒤, 청와대는 6일까지 국정 정상화와 민심 달래기를 위한 아무런 후속 대책도 제시하지 않은 채 침묵했다. 박 대통령의 강경한 뜻과, 박 대통령을 사실상의 탄핵 대통령으로 규정한 정치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탓이다.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여전히 고언(苦言)을 못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은 6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하루 속히 국정 혼란과 공백을 막고 정부 본연의 기능을 조속히 회복할 수 있도록 비장한 각오로 업무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번 일의 진상과 책임을 국민이 한 줌의 의심도 갖지 않도록 정확하게 밝히는 데 있어서 청와대 비서실도 최대한 협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검찰 수사를 수용하면서도 국정운영 권한은 내주지 않은, 박 대통령의 4일 대국민담화에서 한 발도 나가지 않은 입장이었다.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 포기’는 야당의 공세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마지막 카드다. 야당들은 김 후보자 지명 철회를 여야 영수회담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김 후보자를 지키는 것에 무게를 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6일 청와대에서는 박 대통령이 조만간 김 후보자의 인사청문요청서를 국회에 보낼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김 후보자가 5일 “자진 사퇴는 없다”고 못박은 것도 청와대의 이 같은 기류를 읽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후보자를 포기해야 야당들과 대화의 장이라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김 후보자를 내주면 조금이나마 남은 청와대의 힘을 완전히 잃고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는 것이 고민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이에 인사청문요청서 제출 전에 박 대통령이 김 후보자를 만나 내치 권한 이양 의지를 명확하게 밝힐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야당의 반발이 뻔한 상황에서 김 후보자를 고집한 것은 여전히 주도권 싸움을 머리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은 당분간 외부 일정을 거의 잡지 않고, 각계 원로와 종교지도자 등의 의견을 듣는 자리들을 만들 것이라고 한다. 박 대통령이 ‘듣는 행보’를 하면서 시간을 버는 동안, 한광옥 실장은 여야와 영수회담 문제를 집중 조율할 예정이다. 영수회담에서 박 대통령이 김 후보자 지명을 거둬들이고 여야에 총리 지명권을 넘긴 뒤 정치 불개입을 위한 여당 탈당을 선언하면 국정 수습의 물꼬가 트일 것이라고 여야는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영수회담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여야 대표들을 만나 김 후보자의 국회 인준 협조를 설득하는 기회로 삼으려 하는 쪽에 가깝다. 청와대가 김 후보자 카드를 움켜 쥔 채 영수회담 개최 성사에 목을 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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