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1973년 4월 개발 착수
1년6개월 뒤 세단ㆍ쿠페 2종으로 출시
한국, 세계 16번째 車개발국에
이름 공모 ‘아리랑, 유신’ 1,2위
수출 위해 현대적인 이름 선택
현대자동차가 승용차 ‘포니’를 개발한 건 1975년이다. 국내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는 자동차 기술 자립의 첫 걸음이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이 포니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만큼 의미 있는 차다.
72년 당시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1만8,000대였고, 이중 승용차가 9,500대였다. “좁은 내수시장만으로는 자동차 산업을 영위할 수 없고, 수출을 하려면 고유모델이 필수”라는 게 현대차 수뇌부의 판단이었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73년 4월 포니 개발에 착수했다.
포니 외관 디자인은 이탈리아 이탈디자인사의 쥬지아로가, 차체설계는 만토바니가 담당했다. 포니가 첫 모습을 드러낸 건 74년 10월 30일 개막된 토리노 국제모터쇼였다. 보닛이 길고 트렁크가 거의 없는 ‘롱노즈 패스트백’ 스타일 세단과 쿠페 두 종류였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16번째,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자동차 독자모델을 개발한 국가가 됐다. 현대차는 포니를 만들며 해외 업체들의 견제 속에서도 본격적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설 수 있었다.
포니에는 일본 미쓰비시의 1,238㏄ 엔진과 4단 수동변속기가 탑재됐다. 첫 출고 시 국산화율은 90%였다. 포니는 최고출력 80마력에 최대토크 10.8㎏ㆍm, 최고속도는 시속 155㎞였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 시간(제로백)은 27.03초. 경쟁 차들이 최고속도 140㎞/h, 제로백 40초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우수한 성능이다.
76년 2월부터 판매된 포니는 첫해 1만726대가 팔려 전체 승용차 시장의 43.6%를 점유했다. 남미 에콰도르를 시작으로 수출도 76년 1,019대, 77년 7,421대, 78년 1만8,317대, 79년 1만9,355대로 쑥쑥 증가했다.
첫 수출 이후 미국 시장 진입까지는 꼭 10년이 걸렸다. 86년 1월 '포니 엑셀’ 1,000대가 미국으로 향했고, 곧 선풍적 인기를 얻었다. 당시 현대차를 이끈 정세영 회장은 ‘포니정’이란 별명을 얻었다. 현대차에 있어 포니는 오늘을 있게 한 초석이다.
이런 포니의 이름은 자칫 ‘유신’이나 ‘새마을’로 결정될 수도 있었다. 현대차는 국민을 대상으로 차명 공모를 진행했는데, 아리랑 유신 무궁화 새마을 순으로 많이 접수됐다. 포니는 애초에 순위에 없었다. 현대차는 무려 5차례에 걸친 심사 끝에 73년 9월 포니라는 이름을 확정했다. 수출을 위해 만든 차라 해외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현대적이고, 보편적인 이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차명을 결정하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야생마란 의미의 ‘머스탱’을 만드는 미국 포드가 조랑말을 뜻하는 포니 상표를 한국 특허청을 비롯해 전 세계에 이미 등록한 것이다. 결국 현대차는 포드와 협상해 상표를 사들인 뒤 주요 국가에 현대 상표로 등록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조랑말 앰블럼을 붙인 포니의 수출길이 열렸다.
글ㆍ사진=오토다이어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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