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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두 “외환위기 때보다 심각한 상황… 정치권, 유불리로 접근하면 안돼”

입력
2016.11.0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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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정부나 정치인 모두 당장 해결해야 할 경제문제들을 대선 이후로 미루려고만 한다"며 답답해 했다. 배우한 기자 bwh3140@hankookilbo.com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정부나 정치인 모두 당장 해결해야 할 경제문제들을 대선 이후로 미루려고만 한다"며 답답해 했다. 배우한 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산업 구조조정, 가계부채 등 자칫 잘못하면 한국 경제를 뿌리째 뒤흔들 문제들이 폭발 직전인데, 정부도 국회도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은 뒷전이니….”

지난 대선에서 현 정부 경제공약 개발을 주도했던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서강대 경제학부 석좌교수)을 마포의 국가미래연구원에서 만났다. 김 원장은 이 엄중한 시기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정부와 국회가 마비 상태에 빠진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 수립 이후 공직을 맡지 않고, 권력과 자본에서 자유로운 ‘독립적 싱크탱크’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국가미래연구원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회원들이 월 5만원(특별회원은 100만원) 씩 추렴한 돈으로 운영한다. 김 원장은 “박 대통령도 원래 회원이었지만 대통령 당선 직후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탈퇴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특히 보수와 진보 학자 간 토론을 통해 경제현안에 대한 공동해법을 제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올 5월 조선ㆍ해운 산업의 위기가 가시화되자 보수 진보가 망라된 10명의 지식인 이름으로 ‘구조조정, 새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성명서가 발표됐는데, 이도 김 원장이 이룬 성과 중 하나다. 우리 경제의 불평등 구조 개선을 위해 농협, 중기중앙회 등과 혁신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노력을 함께하고 있기도 하다. 그 어느 때보다 여-야, 진보-보수 등 진영 간 소통과 협력이 중요한 이 시기, 김 원장에게 그 길을 물었다.

_최순실 국정농단이 불거진 이후 정파나 계층의 구별 없이 온 국민이 깊은 상실감에 빠졌다. 짧은 기간 내에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했다’는 성취감이 순식간에 허물어졌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민신뢰가 무너짐에 따라 국가가 1997년 외환위기 상황보다 더 심각한 국면에 있다. 정치인들이 이 상황을 권력게임의 유불리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듯해서 더 걱정이다. 대통령의 대응이 아직까지도 바람직하지 못해 더욱 안타깝다. 하루빨리 국회가 추천하는 책임 총리를 임명해야 한다. 김병준 총리 후보자의 경우 절차상 잘못이 있다. 대통령이 좀더 낮은 자세로 야당과 대화해야 한다. 야당도 수권정당이 되려면 대승적 관점에서 협조해야 한다. 우리 모두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민생이라는 관점에서 지혜를 모아야 이 난국의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다.”

_우리나라 경제에서 대처해야 할 시급한 문제가 무엇인가.

“우선 구조조정이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은 정리하고 기업 내부에서도 되는 사업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리면서 재편하는 것이 구조조정인데, 그건 경제뿐 아니라 정치 과정이다. 기업과 지역, 노동자 등이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도하되 국회도 협조하면서 치열한 논의를 통해 합의해야 한다. 구조조정은 시행 시기의 적절성이 중요하다. 논의가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건전한 기업도 어려워진다. 정부와 금융권의 돈이 회생 가능성 없는 기업에 계속 투입된다면 결국 돈과 인력이 묶이게 되고, 해당 기업은 덤핑 등을 해 시장질서를 해친다. 그러면 경기규칙이 무너져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고, 멀쩡한 기업도 어려워지고 경제 전체로서도 성장의 기회를 잃게 된다. 그런데 지금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하나는 부채다. 중국은 기업부채, 일본은 정부부채가 고민이다. 우리나라는 가계부채가 제일 고민이다. 가계부채 문제는 기업이나 정부보다 채무자 수가 훨씬 많아서 해결이 더 어렵다. 게다가 저성장이 장기화하면서 가계부채가 계속 쌓여간다. 지난 3년간 증가한 국가총부채(정부, 기업, 가계)의 30% 정도만 경제성장 효과로 이어졌다. 이것은 부채가 자꾸 늘어가는 악순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심각한 상황이다. 속으로는 부채 때문에 썩어들어 가고 있고 겉으로는 기업들이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 경제의 현재 상황이다.”

_구조조정 문제부터 이야기하자. 하지만 국회에서 구조조정방안을 논의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회생방안을 만들어, 기업주에게 “사인해라, 안 하면 뺏는다” 식의 방법이 반복됐는데, 과연 복잡한 이해가 충돌하는 국회에서 논의해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물론 정부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국회 논의를 거치지 않으면 제대로 집행될 수가 없다. 과거에 국회를 거치지 않고 처리했기 때문에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국회를 거쳐야 하는 이유는 노동자들의 협조와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자리 문제이기도 하니까. 해당 지역 의원의 이해도 필요하다. 정부가 좋은 안을 갖고 있어도 노조 반대나 지역구 의원 반발에 밀려 제대로 된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지금 우리 상황은 정부도 국회도 골치 아픈 문제는 다음 정권으로 떠넘기려고만 한다.”

_가계부채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가계부채는 조금씩 점진적으로 줄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의 성장 정책과 충돌이 생긴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부양을 통해서 경기를 살리려다 보니 지금 산업 생산의 40%가 건축 부문이다. 이걸 한꺼번에 줄이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가계부채는 반드시 줄여야 한다. 부동산도 이미 과잉공급 상태다. 내년 하반기부터 입주 시기가 도래하니 그때부터 부동산 시장이 위축될 거라 본다. 미리 부동산 경기 과열을 식혀야 한다.”

_부동산 시장이 과열된 건 서울 강남지역이니까, 강남을 식히는 직접적 부동산 대책이 필요한데 대출을 줄여 엉뚱하게 서민들 목을 조르고 있다.

“그래서 선택적인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 공무원 입장에서 보편적 정책보다 선택적 정책이 훨씬 어렵다. 하지만 지금은 선택적 금융ㆍ행정기법을 동원해야 한다. 부동산 시장 과열의 주요 이유는 저금리다. 이자가 적으니 부담이 적어 거액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산다. 그런데 그것이 투기목적으로 활용되는 대표적인 지역이 강남 등 몇 곳이다. 돈 많은 사람끼리 거래하면서 붙이고 또 붙인다. 은행에 맡겨놓는 수신금리는 1%대지만 잘만 하면 아파트를 사고팔아서 금세 1억원을 벌 수 있으니까 거기서 다 돌고 도는 거 아닌가. 그래서 강남 등 투기성 거래가 많은 곳에 대해서는 부동산 투기 진정용 선택적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_문제는 산적해 있는데 해결방안이 없는 상황이다.

“해결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후진국으로 떨어질 거다. 얼마나 빨리 올지는 모르겠다. 여하간 새 정권이 출범하는 2018년에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 될 거다. 내년도 물론 경제가 회복될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대선 때문에 금리를 올리기도 힘들 거고 재정도 확장적으로 운용될 테니 어떻게든 버틸 것이다. 그래서 모든 어려움이 2018년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내년 대선에 도전할 주자들은 2018년 집권하자마자 집행할 수 있는 비상경제 대책을 미리 만들어 놓아야 한다."

_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경제부문 정책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내년 대선에서 경제 분야 화두는 뭐가 될까.

“국가미래연구원이 전문가들에게도 물어보고, 빅데이터도 분석해 시대정신을 조사했다. 전문가들이 내세운 시대정신을 집약해보면 ‘공정ㆍ혁신ㆍ통합’이다. 그 중 경제에 해당하는 게 공정과 혁신이다. 일반 국민의 생각을 파악하기 위해 빅데이터 분석을 해보니 ‘공정과 통합’은 전문가들과 같은데 ‘혁신’ 대신 ‘안전’이 더 큰 화두로 떠올랐다. 안전은 두 가지 의미인데 재난ㆍ재해로부터 안전, 또 하나는 일자리의 안전이다. 현실적으로는 ‘일자리 창출’과 ‘불평등 완화’가 중요한 화두가 될 거로 생각한다. 일자리 문제와 불평등이 계속 악화하면 비정규직 문제와 임금구조 양극화 이슈도 커질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와 4차산업혁명의 흐름 속에서 좋은 일자리는 기업과 정부의 혁신 없이 창출되기 어렵다. 혁신이라는 개념 속에는 구조조정도 당연히 들어간다. 가계부채 해법도 중요한 대선 쟁점이 될 것이다. 기업은 구조조정이라는 답이 나오지만 가계부채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차기 정권에 대단한 고민거리가 될 거다.”

_국가미래연구원은 진보 성향의 경제개혁연구소ㆍ연대와 정기적으로 토론하며 여러 경제현안에 대해 공동의 해법을 제시해 주목받고 있다.

“정치인들이 편을 나눠 싸우기만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학자들은 이념이 서로 다르더라도 대화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다. 진보진영에서는 주로 장하성, 김우찬, 김상조 교수가, 우리 쪽에선 나와 신광식 박사가 대화 창구 기능을 하고 있다. 그 동안 재벌, 부채 문제를 시리즈로 다루었고, 현재는 불평등 이슈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27일에는 개헌에 대해 논의했다. 김병준, 김호기, 김형기 교수 등과도 꾸준히 의견교환을 하고 있다. 이런 성격의 대화에 정치인들도 포함해서 하려는 희망을 품고 있다.”

_경제 분야야말로 이념에 따라 정반대의 해법을 내놓은 경우가 대부분인데, 소통이 잘 된다니 뜻밖이다.

“선입견이다.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는 서로 지향하는 가치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현안에 대한 진단은 같을 수 있다. 물론 해법은 가치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 그러나 보수든 진보든 국가발전과 국민 후생 증대라는 지향점은 같다. 이런 같은 지향점을 바탕으로 가치관의 차이도 어떻게 하면 좁힐 수 있는지 논의할 수 있다. 의견이 하나로 일치할 순 없지만 마음을 열고 들으면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 정치인들도 마음을 서로 열어 놓고 함께 얘기해서 심한 갈등에서 헤어났으면 좋겠다. 우리 모델이 그런 토대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_함께 내년 대선에 제시할 ‘모범공약’ 같은 걸 만들 수도 있겠다.

“의견들을 나눠봐야지. 필요하면 하는 거고. 가능하다면 보수 진보의 정치인들과 함께하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노력을 해보려 한다."

정영오 여론독자부장 young5@hankookilbo.com

정리=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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