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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시집들

입력
2016.11.0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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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일랜드의 여성 소설가의 낭독회가 서울에서 열린 적이 있었다. 작은 무대가 꾸며지고 관객들이 자리를 채웠다. 낭독이 끝난 후 한국의 소설가, 시인들이 함께 대담을 가졌다. 나는 사실 그녀, 클레어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어 별로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조금 시시한 질문을 던졌다. “한국의 젊은 시인이나 소설가들은 책이 안 팔리니까 가난하고…. 그래서 결혼도 못해요. 연애도 못하고요. 아일랜드는 어때요?” 한국의 작가며 관객들이 킥킥거렸다. 클레어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일랜드에선 가장 인기 있는 직업 중 하나가 시인인데. 특히 남자 시인들은 길을 걷기도 힘들어요. 여자들이 사인해달라고 와글와글 모여 들거든요. 아일랜드 사람들은 정말 시를 좋아하고, 또 그래서 시인들을 사랑해요.” 한국의 젊은 남자 시인들이 탄성을 질렀다. 클레어만큼이나 예쁘고 키 큰 금발의 여인들이 길을 걷는 자신을 붙들고 펜과 종이를 내미는 장면을 상상했을까. 그들은 공연히 호들갑을 떨며 기뻐했다.

한동안은 한국도 그런 호시절이 오나 싶었다. TV 문학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시집들이 꽤나 팔리고 시집 전문서점도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해열제를 사러 들른 약국에서, 중년의 여자 약사는 내가 들어서자 읽고 있던 시집을 덮었다. 시집을 읽고 있는 약사를 처음 보아서 나는 괜히 신이 났다. 트위터에서 시작된 문학계 성폭력 고발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고발문과 사과문이 번갈아 올라온다. 뒷골목 양아치인 줄 모르고 그들을 잠시 사랑했던 독자들이 영영 시집을 버릴까 걱정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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