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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상미술 거목 유영국, 단순함 속 고요한 긴장감

입력
2016.11.0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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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가들이 사랑했던 화가

사물의 궁극ㆍ자연의 정수 보여줘

힘차고 자신감에 넘치는 유영국 화백의 1964년 작.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힘차고 자신감에 넘치는 유영국 화백의 1964년 작.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다.”

한국 화단에 처음으로 추상을 심은 데 이어 척박한 국내 미술 환경에서 전위적인 미술단체들을 이끌었던 유영국 화백은 작가들이 사랑한 화가이자 후배들이 존경하는 작가였다. 돌연 그룹 활동을 중단하고 혼자만의 세계로 들어간 그는 타계 전까지 사물의 ‘궁극’을 좇았다. 그래서 산을 품는 게 가능했을까.

유영국 화백.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유영국 화백.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한국 근대미술 거장 시리즈(변월룡ㆍ이중섭ㆍ유영국) 마지막 전시로 대규모 회고전 ‘유영국, 절대와 자유’전을 내년 3월 1일까지 서울 덕수궁관에서 열고 있다. 끊임없는 단련으로 자연의 ‘정수’를 보여줬던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 화백을 재조명하는 전시다. 60여 년 작품 인생을 아우르는 100여 점의 작품으로 구성된 최대 규모의 이번 회고전에는 1960년대 유화 작품 30여 점과 1970년대 이후 완성된 미공개 작품 10여 점을 선보인다.

울진에서 태어나 도쿄문화학원에 유학한 그는 그곳에서 자유로운 미술 사조들을 경험한다. 그리고 거기서 유 화백은 당시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추상미술의 리더였던 무라이 마사나리, 하세가와 사부로 등과 교류했다.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한창일 때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가족 부양을 위해 잠시 그림 그리기를 중단했다. 그러나 이내 다시 붓을 든 유영국 화백은 광복과 전란 이후 보잘것 없던 국내 미술 토양에서 전위적인 미술단체였던 신사실파(1948), 모던아트협회(1957), 현대작가초대전(1958) 등을 이끌었다.

하지만 그는 “그룹 활동의 시대는 끝이 났다”는 선언과 함께 1964년부터 홀로 작업에 몰두했다.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규칙적인 그림 그리기로 노동인으로서 자신을 단련시키며 그림을 그려 나갔다. 그의 작품이 지니는 단순함 속의 긴장감은 최고의 경지에 다다른 회화적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고 평가 받는다.

“60살까지 기초 공부를 한 뒤 자연에 좀 더 부드럽게 도달하겠다”는 그의 다짐은 건강이 급속히 악화하며 위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그가 61세부터 달았던 심장 박동기와 8번의 뇌출혈, 무려 37번의 병원 입원이 정신까지 꺾지는 못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왔을 때 캔버스에 남겨진 자연은 역설적으로 지극히 조화롭고 평화로웠다.

국립현대미술관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3일 덕수궁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유 화백을 러시아 출신의 미국 화가 ‘마크 로스코’에 견주면서 “강렬하면서도 긴장이 있고 그와 동시에 또 조화롭다”며 “지금 사회가 혼란한데 유영국의 작품이 ‘잠시 멈춤’의 의미를 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변해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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