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 물대포에 맞고 의식을 잃었다가 끝내 숨을 거둔 농민 고 백남기(69)씨의 장례가 5일 엄수됐다. 사망 41일 만이다.
이날 오전8시 서울대병원에서 치러진 발인식에는 유족과 백남기투쟁본부를 비롯해 수십명의 시민이 참석해 백씨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정현찬 백남기투쟁본부 공동대표는 “백씨가 쓰러지고 장례가 치러지기까지 유족들이 너무 큰 고통을 받아 왔다”며 “지금은 고인을 편안하게 보내드리지만 앞으로 책임자 처벌을 위해 계속 싸워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환하게 웃는 백씨의 영정 사진에는 빛나는 촛불들도 함께 새겨져 그를 감싸고 있었다. 영정을 마주한 백씨의 딸 도라지(34)씨와 민주화(29)씨, 손자 지오(5)군 등 유족은 추모 찬송가가 울려 퍼지자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백씨는 지난해 11월14일 제1차 민중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과 경찰이 격렬하게 대치하던 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뒤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백씨는 투병 끝에 지난 9월25일 숨졌으나 법원이 곧바로 시신 압수수색검증영장(부검영장)을 발부하면서 장례는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총 6차례에 걸쳐 유족과의 협의를 시도했지만 유족과 투쟁본부는 완강히 거부했다. 경찰은 부검영장 집행기한이 만료된 지 3일 만에 결국 영장 재신청을 포기했다.
발인식을 지켜 본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강모(51ㆍ여)씨는 “백씨가 쓰러지던 순간 현장 인근에 있었다”며 “고인이 곧 내가 될 수 있었다는 생각에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학생 정모(27)씨도 “장례는 끝이 아니라 진상규명을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백씨의 장례는 발인을 시작으로 장례 미사로 이어졌다. 서울 명동성당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한 미사에는 유족과 시민단체 관계자, 정치권 인사 등 800여명이 참석했다. 염 추기경은 “백 임마누엘 형제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두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슬픔에 빠져 있다”며 “형제님의 용기와 사랑을 남아있는 우리가 이어나가 좋은 열매를 맺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후 백씨 시신은 지난해 집회에서 고인이 쓰러진 장소인 종로구청 사거리로 향해 노제를 치렀다. 만장 80여개와 추모객들이 상여를 뒤따르는 가운데 도심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소리꾼의 구슬픈 장송곡을 들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자녀 셋의 손을 잡고 노제를 지켜보던 김모(36ㆍ여)씨는 “아이들에게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주려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며 “민주주의를 지키려다 숨진 고인과 유족들에 힘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광화문광장에서 오후 2시부터 진행된 영결식에는 시민 1만여명이 함께 해 고인을 하늘로 떠나 보냈다. 시민들은 주최 측이 마련한 1,000개의 좌석이 금세 동나자 길에 서서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영결식을 지켜봤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문재인 전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 야권 인사들도 대거 참석했다. 유족들은 이후 인근 청계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집회에 합류했다. 백씨 시신은 6일 광주 망월동 5ㆍ18민주묘지 구 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글ㆍ사진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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