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 프리미엄’ ‘모던한식의 리부팅’ ‘반(半)외식의 다양화’ ‘나 홀로 열풍’
지난 3일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17년 외식트렌드 키워드 입니다. 하지만 이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 홀로 열풍’을 제외하면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실제 대학생 김재원(22)씨는 “영어도 아니고 한글도 아닌 용어 때문에 무슨 뜻인지 한 눈에 알아보기 어렵고 난해하다”라며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50대 주부 유수민씨도 “분명 트렌드라고 했는데, 너무 익숙지 않은 용어라 ‘내가 유행에 뒤처지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용어에 대한 설명도 어렵습니다. 모던한식의 리부팅의 경우 “퓨전한식의 대중화, 한식와 외국식의 조합 등을 통해 또 다른 장르의 한식이 오너셰프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여기서 오너셰프란, 직접 자신의 식당을 운영하는 요리사입니다. 하지만 이 용어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최근 요리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셰프’라는 단어를 친숙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충분히 풀어서 설명할 수 있는 용어를 굳이 업계용어로 써야 했는지 의문입니다. ‘반외식의 다양화’도 “배달어플리케이션 등 주변기술의 발달을 통해 개인의 취향에 맞춰 포장외식을 다양하게 소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그렇다면 용어 표현도 보다 간단하게 ‘포장·배달음식의 다양화’라고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사실 농식품부의 외식트렌드 키워드가 난해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농식품부의 외식트렌드 조사는 2014년부터 이뤄졌고, 그 때부터 매번 이듬해 키워드를 내놓았는데요. 작년에 제시한 올해 외식트렌드 키워드는 ‘미각노마드·푸드플랫폼·나홀로 다이닝’ 입니다. 미각노마드는 ‘미식(Gastronomy)+유목민(Nomad)’의 합성어로, 소비자들이 맛을 찾아 유랑하는 외식소비 현상을 지칭합니다. 또 푸드플랫폼은 외식과 적용할 수 있는 모바일과 인터넷 정보 기술 기반의 모든 푸드서비스 테크놀로지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2014년에 제시한 트렌드키워드도 ‘로케팅 소비, 먹방신드롬·한식의 재해석’ 입니다. 해마다 적어도 한 개 이상씩 영단어가 섞인 용어가 등장한 셈입니다.
외식트렌드 키워드를 제시하는 기본 목적은 소비자트렌드 분석을 통해 외식사업자들이 효율적인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함입니다. 또 예비창업자들에게 유망아이템을 발굴하고, 외식시장 상황을 분석하는 데 도움을 주는 등으로 창업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키워드는 매번 영어로 점철돼 있어 한 눈에 알아보기 어려운 데다가, 생소하기까지 해 트렌드를 파악하는 데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 키워드는 소비자 약 3,000명을 대상으로 외식소비행태를 조사한 후, 푸트컨설턴트, 요리사, 관련 업계 교수 등 전문가 20여명이 모여 만듭니다. 업계 전문가들끼리만 머리를 맞대다 보니 지나치게 업계 용어와 전문용어 등이 혼재한 어려운 키워드가 탄생한 게 아닌가 하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한글로 표현하면 설명이 너무 길어지는 경향이 있고, 또 기존에 제시했던 표현 말고 다른 표현을 찾다 보니 영단어를 쓰게 된 것일 뿐 일부러 어렵게 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취지로 공을 들여 만든다 한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트렌드 키워드’는 결과적으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특히 외식업계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2030대 청년층부터 4050대 중·장년층까지 다양한데,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표현을 만들기 위해선 보다 세심하고,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특히 업계 사람들끼리만 사용하는 전문용어나 영어표현은 되도록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요.
세종=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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