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무게에 스스로 무너진 박 대통령
자기 과신과 오만이 초래한 국정공백
대권 후보도 역사의 예외 될 수 없어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4일 대국민 사과담화 당일 5%로 나왔다. 역대 대통령 지지율 가운데 최저라니 살아도 살아 있는 대통령이 아니다. 대통령이 근본도 알 수 없는 여인에 의지해 빚어진 국정농단 사태에 아연실색한 국민의 분노와 허탈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결과론적 비판만큼 허망한 게 없긴 하나 돌아보면 박 대통령은 이미 2년 전 ‘십상시’ 사태 때 ‘비선(秘線)’에 대한 국민과 여론의 경계심, 폭발성을 감지했어야 했다.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였던 정윤회라는 인물이 측근 3인방을 통해 국정을 좌지우지한다는 청와대 문건이 검찰 수사로 이어질 당시 대통령은 최 여인과의 관계를 끊어야 했다. 최씨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이고, 공조직을 믿었어야 했다. 박 대통령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추었다” “개인적 인연을 믿고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고 후회했지만, 엄밀하게는 계기가 왔을 때 바로잡지 못하고, 생각을 고쳐먹지 못한 자기 과신과 오만, 어리석음을 탓했어야 했다. 2년 전 야당 의원이 정윤회씨 딸의 승마 국가대표 특혜 의혹을 제기했을 때 최 여인의 딸 문제로 보지 못한 대통령의 눈을 탓해야 했다. 대통령의 믿음을 배신한 최 여인이 아니라 측근 관리에 대한 자만을 포함한 대통령의 문제를 말했어야 했다.
완전히 등을 돌린 민심에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는 회한은 ‘대통령의 자리를 너무 가볍게 봤다’는 자성(自省)이었어야 했다. 복잡다단한 업무의 중압감 못지 않게 온갖 종류의 파리떼와 십상시가 들끓는 대통령 자리의 취약하고 어두운 속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스스로는 조심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 했지만 되풀이되는 측근 비리의 역사를 무겁게 여기지 못한 탓이다.
2차 세계 대전 종반 무렵 미국의 부통령인 트루먼이 루스벨트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에 대통령 부인 엘리너 여사에게 황급히 달려가 “당신을 위해 뭘 해드리면 되겠느냐”고 위로했을 때 엘리너 여사는 “내가 해 줄 말이다. 이제 당신이 골치 아픈 일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골치 아픈 자리’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무엇으로도 국민의 마음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대통령의 말은 물러나는 순간까지 현실일 수밖에 없다. 국민이 지금 눈여겨보는 것은 힘을 잃은 대통령의 거취보다 불투명한 정치상황과 ‘골치 아픈 독배’를 기꺼이 마시려 줄을 선 사람들이다. 믿었던 최 여인에게 발등 찍힌 자신을 탓하며 “스스로를 용서하기 어렵고 밤잠을 이루기 힘들다”는 대통령이지만 “도대체 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 어디로 갈 것인가”를 걱정하며 잠을 설치는 국민이 많다. 민주적 헌정 질서가 수립된 이후 사실상의 권력 공백과 국정 혼란에 불안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심리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과 거부는 인간의 본능적 속성이자 이성의 작용이기도 하다.
지금의 권력 공백과 이에 따른 국정 혼란 못지 않게 큰 문제는 장차 권력을 받게 될 대권주자들에게서 초유의 국가적 위기 사태에 대응하는 지도자의 적절한 자질과 면모를 읽어 낼 수 없다는 데 있다. 국민의 분노에 편승해 사자후를 토하는 그 이상의 것을 보여 주지 못하는 대체 권력의 부재에 국민의 불안은 더 커진다. 웅변과 다를 게 없는 여러 후보의 행태를 일일이 거론할 필요도 없이 지지율 1위라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마저 혼란한 정국의 타개 방안과 관련해 당과 스텝이 꼬이는 형편이다. 국민의 분노는 분노대로 담아내면서 불확실성을 제거할 통찰과 혜안, 추진력을 보여 주지 못하는 리더십의 위기는 여야를 아우르는 국가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골치 아픈 독배를 기꺼이 들려는 이들은 스스로의 지도자적 자질을 되돌아 봐야 한다. 역사적으로 되풀이되는 대통령의 위기에서 자신만은 역사의 예외가 될 수 있다 여긴다면 국민은 또 한번 반복되는 어리석음과 불행을 보게 될 터이다. 대통령제의 위기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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