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빽도 운도 없지만, 삶을 찾아나선 청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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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빽도 운도 없지만, 삶을 찾아나선 청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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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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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의 이탈리안 식당 ‘청춘호텔’. 테이블 세 개와 바 테이블 하나짜리 식당은 김대열씨와 그의 친구들이 칠전팔기 끝에 맺은 소중한 결실이다. 북노마드 제공

우리, 독립청춘

배지영 지음

북노마드ㆍ400쪽ㆍ1만6,800원

각자도생(各自圖生). 이 말이 지금처럼 와 닿는 때가 또 있을까. 신자유주의가 몰고 온 거대한 절망에 몸을 익히기도 전, 때아닌 샤머니즘의 귀환에 정신을 다잡느라 여념 없는 나날이다. ‘토닥토닥’ 류의 어떤 힐링서도 먹히지 않는 극한의 상황은 결국 인간을 본질로 돌려 놓는다. 사는 건 뭘까. 먹고 자고 일하는 평범한 삶이 왜 이렇게까지 불가능한 일이 됐을까.

‘우리, 독립청춘’은 군산에 사는 젊은 남녀 43인의 이야기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배지영씨가 2014년부터 군산 바닥을 누비며 이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돈 없고 빽 없고 운도 없는 이들의 출발은 평범하거나 평범 이하다. 지방대 혹은 고등학교까지만 졸업하고 취업일선에 나서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건 하루 12시간 근무에 월급 100만원 이하의 삶이다. 정말 고통스러운 건 그 삶의 끝에 어떤 약속도 없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살아간다. 밥 먹고 놀고 결혼한다. 웃고 울고 꿈꾼다. 삶을 이어가는 게 아니라 삶이 이들을 끌고 간다.

군산의 이탈리아 식당 ‘청춘호텔’의 주인 김대열씨는 어릴 적부터 요리사를 꿈꿨다. 대학 재학 중 서울로 올라와 레스토랑을 전전하는 그에게 한 선배가 말했다. “메인 셰프가 300만원 받는데 그게 네 미래야” 대열씨의 꿈은 ‘내 가게’를 여는 것으로 바뀌었다. 출발은 좋았다. 트럭을 사서 가스불판 깔고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8,000원짜리 파스타를 파는 청년이 신기했던지 간이 테이블까지 손님이 꽉 찼다. 그러나 한 달 만에 단속에 걸렸고 대열씨는 재기를 노리며 록 페스티벌에 트럭을 끌고 갔으나 행사 내내 비가 오는 바람에 사흘 만에 1,000만원을 고스란히 날렸다.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압구정동 고시원으로 돌아온 그는 주차장을 빌려 밤에는 파스타 장사를, 낮에는 도시락을 팔았다. 그러나 가게가 성황을 이루자 건물주가 찾아와 월세를 두 배로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망한 거죠” 20대 후반에 고등학생들 틈에 끼어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열씨를 군산에 사는 부모님이 불러 들였다. 그는 거기서 다시 식당을 열었다. 장사가 무서웠지만 여전히 마음은 떠나지 않았다. 지금은 군산의 핫 플레이스로 자리잡은 ‘청춘호텔’의 사연이다.

군산시 임피면에서 13년째 낙농업에 종사 중인 장선수씨의 손. 엄마는 아들이 넥타이 매고 일하길 바랐지만 장씨는 자신이 택한 일에 책임을 지고 싶었다고 한다. 북노마드 제공

유치원 외부강사로 일하는 채승연씨는 3남1녀 집안의 장녀로 태어났다. 여느 ‘모범 장녀’와 마찬가지로 상고를 나와 자동차 정비사업소에서 일하며 꼬박꼬박 집에 월급을 갖다 주던 그에게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어머니에게 유아교육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뜻밖이었다. 5년 간 드린 월급은 아버지의 빚을 갚는 데 다 썼고, 셋째가 대학에 가야 하는 상황이라 둘씩이나 대학에 보내기가 어렵다는 거였다.

승연씨는 비뚤어지기로(?) 했다. 어머니와 상의 없이 야간대학 유아교육과에 원서를 넣고 졸업해 스물여덟 살에 유치원 교사가 됐다. 그러나 꿈꾸던 일이 마음 같지는 않았다. 3주 만에 성대결절, 성대마비, 성대염증을 얻은 그는 1학기 만에 스스로 실직자가 됐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뭘까’. 고민하던 승연씨는 여러 유치원을 돌면서 블록 수업하는 일을 찾아냈다. 비정규직이었지만 사람 좋아하고 돌아다니는 것 좋아하는 그에게 딱 맞았다. 최초의 일탈은 승연씨에게 교훈을 남겼다. 인생이 결정되는 나이는 따로 있지 않다는 것, 스스로에게 계속 기회를 부여하는 한 자신의 삶에 기회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헬조선’의 자장이 서울을 벗어나 대한민국 전체를 잠식한 지금, 우리 눈에 들어오는 건 위로 향하는 사다리가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다. 아래 있는 자들은 눈이 밝다. 여기저기서 삶을 찾아내고 삶을 재정의하려면 눈이 밝을 수 밖에 없다. 이것도 삶이고 저것도 삶이라고 말한다. 여기도 삶이 있고 저기도 삶이 있다는 걸 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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