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절정을 넘고 있습니다. 단풍은 지고 난 뒤에도 아름답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낙엽 때문입니다. 늦가을에 제격인 단풍 명소와 함께 낙엽이 아름다운 길들을 안내합니다.
소개하고 싶은 곳은 전남 순천의 조계산 굴목이재길과 내장산 자락의 작은 마을인 반월마을에서 백양사로 넘어가는 길, 그리고 경남 함양에 위치한 상림이란 곳입니다.
굴목이재는 선암사에서 조계산 자락을 넘어 송광사까지 넘어가는 길을 말합니다. 선암사는 태고종의 본산이며, 송광사는 조계종을 대표하는 3보사찰 중 하나인 승보사찰입니다. 조계산이 어떤 산이길래 거찰이 두 개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이 굴목이재를 넘어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입니다.
순천의 선암사는 꽃절로 유명한 곳입니다. 매년 4월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인 선암매와 돌담사이에 핀 홍매화, 백매화, 청매화, 그리고 5월이면 왕벚꽃이 흐드러집니다. 6월이면 신록이 곱고 더운 여름날엔 편백숲이 우거져 있어 시원한 바람을 맞기에 제격이죠. 가을에는 굴목이재의 단풍 등 4계절이 다 아름다운 그런 사찰입니다.
조계산의 골목이재길은 선암사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송광사에서 시작하면 송광사를 다 둘러보고 또 굴목재로 가는 길 입구까지의 동선이 너무 길어서 초반에 힘을 다 써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원래 길을 걸을 때 기분이 많이 좌우하잖아요. 그리고 굴목이재도 걷고 선암사 송광사까지 다 둘러보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서야 합니다. 이번 글에선 두 사찰은 빼고 굴목이재만 설명드릴게요.
선암사 매표소를 지나 삼인당이라는 작은 호수가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길이 있습니다. 굴목이재는 그 길로 가야 합니다. 선암사에서 선암굴목이재까지는 약 2㎞ 되는 길입니다. 그 길이 아마 가장 난코스일겁니다. 선암굴목이재를 남기고 한 400m 정도는 가파른 언덕길이기 때문입니다. 선암 굴목이재만 잘 올라선다면 그 후의 길은 쉬 걸을 수 있으니 쉬엄쉬엄 올라가십시오. 이맘때 단풍은 아마 선암 굴목이재 주변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선암 굴목이재에서 300m만 내려가면 외딴 보리밥집이 있습니다. 그 보리밥집에서 막걸리로 목을 축이시는 분들도 많고 점심을 못 드신 분들은 끼니를 때우기도 합니다. 숲 속의 작은 집. 그 집의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는 모습은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을 겁니다. 보리밥집부터는 호젓한 낙엽길이 이어집니다. 걸음이 저절로 느려지는 길입니다. 온통 낙엽과 단풍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보리밥집에서 약 1㎞정도 가면 송광 굴목이재가 나오는데 이 고갯길은 그리 벅차지 않습니다. 송광 굴목이재에서 송광사로 가는 길은 2.5㎞정도. 중간에 계곡을 만납니다. 늦단풍이 아주 아름다운 곳입니다. 송광사에서 주차장까지는 약 1㎞정도. 그 길도 늦가을을 만끽하기에 그지 없는 곳입니다. 송광사 주차장에는 오래된 식당들이 많이 있으니 저녁을 해결하기 좋습니다.
굴목이재 길은 약 8km 조금 안되고, 총 걷는 시간은 4시간에서 4시간 30분까지 예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작점과 종착점이 다르기 때문에 교통도 잘 알아보시고 가시는 것이 좋습니다.
만일 자가용을 이용했기에 다시 돌아오는 문제로 굴목이재 횡단이 힘들다면 두 곳 중 한 곳을 택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송광사에 주차를 했다면 송광 굴목이재까지 갔다가 원점회귀. 대신 송광사와 주변 암자 등을 구석구석 보세요. 선암사에 주차를 하셨다면 외딴 보리밥집까지 다녀오세요.
두 번째로 소개를 드릴 곳은 내장산자락에 위치한 반월마을의 곡두재길입니다. 가을 단풍의 대명사인 내장산을 옛길 따라 호젓하게 걸을 수 있는 길입니다.
백양사와 내장사는 내장산 국립공원에 자리한 양쪽 사찰로, 단풍으로 널리 알려진 국민관광지들입니다. 그 곳을 가서 단풍을 보는 것은 환상이지만 사람에 치여 매번 곤욕을 치러야 하는 것도 사실이죠. 그래서 저는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정읍 입암리 반월마을에서 곡두재를 넘어 백양사까지 가는 길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이 길의 코스를 처음 상품으로 만든 건 승우여행사의 이종승 대표입니다. 그는 “사람에 떠밀리듯 정신 없이 단풍 구경에 쫓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1970년대에 다니던 길을 트레킹 코스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양의 구룡령 옛길이나 정선 비행기재 옛길처럼 사람은 없으면서 추억은 가득 찬 길처럼 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길이 추령재에서 곡두재를 지나 백양사로 들어가는 옛길로, 이 길은 몇 해 전부터 아는 사람들만 가기 시작했다. 이는 지리산 둘레길이 나오기 전에 최초로 개발된 내장산 트레킹 코스다”고 말씀 하십니다.
내장산 동남쪽 고개인 추령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트레킹이 시작됩니다. 30분쯤 걸어 능선 위로 올라서면 정면으로는 서래봉이, 왼편으로 장군봉과 신선봉이 보이고, 내장산의 주요 봉우리들을 지나 능선을 따라 걸으면 임진왜란 때 왜적을 유인해 물리쳤다는 유군치(留軍峙)가 나옵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장산을 내려옵니다. 덕흥마을을 지나 곡두재까지 한적한 시골마을을 끼고 돌며 계속 걷다 보면 백양사가 훤히 내려다 보여요. 아기 단풍이 빨갛게 절정을 이루는 곳이다. 이렇게 백양사를 내려오면 약 4시간의 트레킹 코스가 마무리됩니다.
사람들에 치이지 않고 백양사에 쉽게 닿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논두렁, 밭두렁과 같은 마을 정경을 바라보며 가기 때문에 또 다른 재미를 줍니다. 요즘은 곡두재가 입산금지가 되어 구암사에서 학바위로 가는 코스로 가야 합니다.
세 번째로 소개를 해드릴 곳은 함양에 있는 상림숲입니다. 천년의 숲입니다. 천년의 숲이라고 해서 그 곳에 있던 나무가 천년이 된 것은 아닙니다.
천년 전 최치원선생이 만든 인공숲입니다. 함양을 가로지르는 위천이란 개천이 매년 장마때마다 범람을 하여 둑을 쌓고 그 곳에 나무를 심은 게 시작이 된것입니다. 상림과 중림 하림으로 크게 세 개의 숲이 있었는데, 나머지는 다 개발이 되었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숲이 상림입니다. 196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었고, 면적은 약 6만평이 조금 넘습니다 .이 곳의 단풍과 낙엽이 좋은 이유는 대부분의 나무가 낙엽활엽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산책로는 산길이 아니고 평지입니다. 길 중간에 숲에서 쉴 수 있게 만든 벤치도 많이 있고, 초입에는 큰 공터가 있어서 돗자리를 깔고 간식을 먹으며 오침을 하기에도 좋습니다. 또한 오래된 정자에 앉아 여유를 갖는 것도 추천해드립니다.
사진을 위해 가신다면 하루 묵고 이른 아침에 위천에서 피어나는 물안개와 함께 숲을 찍으면 최고의 숲사진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함양에는 개평마을이 있습니다. 하동 정씨, 풍천 노씨, 초계 정씨가 터를 잡고 있는 집성촌마을입니다. 함양을 대표하고 있는 양반들의 마을이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한옥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고, 걷는 길과 마을이 호젓하기 때문에 마을길만 걸어도 힐링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함양 상림만을 보기 위해 먼 길 가시라 추천하진 않겠습니다. 거제도나 통영, 지리산 등을 갈 때 중간 함양에 내려 상림을 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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