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파동이 국내 면세점 업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자 선정을 한 달여 남짓 남겨둔 시점에 롯데, SK, 신세계 등 면세점 입찰에 참여한 대기업 다수가 이 사태에 직ㆍ간접적으로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끊임없이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면세 사업자들과 이번 파동간의 유착관계가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자 선정이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을 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4일 면세점업계에 따르면 당초 이번 신규 면세점 특허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고 평가 받아온 롯데와 SK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파문이 커지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롯데는 계열사인 롯데면세점과 롯데케미칼을 통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총 45억 원을 출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SK는 계열사인 SK하이닉스를 통해 미르재단에 68억 원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와 SK가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기금을 낸 것이 면세점 특허와 연관이 있다는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부 기업이 반대급부를 대가로 돈을 냈거나 내려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 기금의 성격에도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선 지난해 7월 이뤄진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자 선정 과정에 최순실 씨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국내 면세점업계 부동의 1위인 롯데는 신동주·동빈 형제의 경영권 분쟁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악화했던 시기인 지난해 11월 월드타워점이 재승인을 받는 데 실패하면서 사업권을 빼앗겼다.
당시 업계에서는 롯데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형제간 경영권 분쟁에 대한 부정적 여론 탓에 사업권을 빼앗겼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번 심사에서는 롯데면세점의 경쟁력과 지난해 사업권 상실에 대한 일각의 동정론, 기존 면세점 직원들의 고용 승계 필요성에 대한 우호적 여론 등으로 특허 탈환에 유리할 것으로 분석됐으나 막판 '최순실 게이트'라는 암초를 만났다.
롯데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주선으로 K스포츠재단에 17억 원을 기부한 데 이어 K스포츠재단에 70억 원을 추가로 지원했다가 돌려받은 사건 때문에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롯데와 비슷한 시기에 K스포츠재단에 80억 원의 기금을 출연하라는 요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검찰 조사를 받는 SK도 숨죽이며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당초 SK네트웍스의 워커힐면세점은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샌즈를 능가하는 세계적 관광명소를 만들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내세우며 면세점 특허 탈환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1,200억 원을 투자해 세계 최장인 170m 길이의 인피니티풀과 사계절 이용할 수 있는 스파 시설을 갖춘 연면적 약 4만㎡ 규모의 ‘워커힐 리조트 스파’를 2년 이내에 완공한다는 계획도 이런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모그룹인 SK가 ‘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리면서 향후 면세점 사업자 선정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몰라 불안한 기색이다.
모그룹인 삼성이 두 재단에 204억 원을 출연한 호텔신라와 5억 원을 출연한 신세계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입찰에 참여한 5개 대기업 중 유일하게 기금을 출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면세점 입찰에 참여한 기업들이 이처럼 불안해하는 것은 과거 면세점 사업자 선정이 온전히 사업적 역량에 대한 객관적 평가지표에 의해 선정됐다기보다는 정치적 입김 등 경영 외적인 변수가 크게 작용했다는 시각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면세점 주무 관청인 관세청이 최근 낙찰 받은 기업의 점수만 공개하고 탈락기업 점수는 개별 통보하는 방안을 검토하자 업체 선정 과정의 불투명성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특허 공고 당시 관세청은 심사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배점표를 중분류 단위까지 상세하게 제시했으며, 운영업체 선정 후 기업들에 대한 최종 평가결과를 공개한다고 밝힌 바 있다.
기업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당국의 오락가락 행보는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특허 심사 때도 면세점 경쟁력보다는 외부 압력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의혹이 일었는데 다시 외부 환경이 부각되고 있다”며 “특허 심사표가 공개된 만큼 그대로 평가해서 면세점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기업을 선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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