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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시대, 공부보다 사는 법 가르치는 가정 이뤄야

입력
2016.11.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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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 스트레스 1위ㆍ행복지수 최악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도 최하위

자녀 행복감 느끼기 힘들어

대학 졸업 후 좋은 회사 입사보다

부모와 행복한 경험 공유 통해

세상을 살 만한 곳 깨닫게 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부모로서 자녀가 불행하기를 바라나요? 참 어리석은 질문이지요. 그런 부모는 아마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경제력이 세계 11위고 신체 건강과 학업성취도는 모두 상위입니다. 부모들이 어렸을 때에 비하면 분명 먹고 살기는 좋아진 셈이죠. 하지만 행복지수(삶의 만족도) 그리고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최하위입니다. 학업 스트레스는 1위고요. 모든 부모가 자녀의 행복을 바라지만 자녀들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실 당신, 행복하신가요? 부모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행복한지 묻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통계를 보면 성인들의 행복지수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가운데 28위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부모, 그 밑에서 자녀들이 오늘 날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다섯 아이의 아빠이자 초등교사입니다. 교육과 심리치료, 놀이를 주제로 책을 쓰고, 스카우트 지도자 겸 부모교육자이기도 합니다. 모든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초등교사의 특성상 다양하게 공부했습니다만 핵심은 ‘부모와 자녀가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느끼는 부모와 자녀가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할 수 있을까요.

부모도 배워야 잘 할 수 있다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자동차를 운전하려고 해도 공부하고 또 훈련해서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자동차 운전과 자녀 키우기 중에 어떤 게 더 어려운가요. 자동차보다 훨씬 복잡하고, 오랫동안 함께 해야 하는 소중한 자녀를 키우기 위해서 부모로서 어떤 공부와 훈련을 했나요.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부모가 되지만 자녀가 이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주려면 좀 더 전문적인 공부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산업화 시대를 살아왔던 부모의 방식이 알파고 시대에는 통하지 않기에 더욱 불안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자녀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면 먼저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일까 고민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교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인류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세 가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욕구가 충족될 때 느끼는 행복, 둘째는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나가는 행복, 셋째는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파악하는 과정의 행복입니다. 원하는 것이 충족되면 기분 좋고 좌절되면 기분 나쁜 것은 당연합니다. 아이들과 부모들은 어떤 욕구가 좌절되었기에 그리 불행하다고 느끼는 걸까요. 심리학자 매슬로우와 앨더퍼의 이론도 함께 간단하게 살펴봅시다.

인간의 욕구를 매슬로우는 7가지로, 앨더퍼는 3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생존뇌, 감정뇌, 사고뇌 삼중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는 욕구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좀 더 간단한 앨더퍼의 이론을 보면 가장 밑바탕에는 생존 욕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신체 건강은 과거나 세계 어느 나라보다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생존하기에는 참 힘든 사회입니다. 대학입시 문제도 결국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먹고 살기 힘든 사회라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지요. 세월호 참사는 우리 아이들이 바다에 빠져도 국가가 구해주지 않는다는 생존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 관계 욕구도 충족되기 어렵습니다. 한국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적은 나라입니다. 부모는 생존을 위해 가족과의 시간을 반납한 채 일해야 하고 아이들은 방과 후에 학원을 떠돕니다. 부모에게 충분히 사랑 받을 때 아이들은 스스로 사랑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다른 사람도 존중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부모는 생존, 먹고 살기 위한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하고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하지 못하며 외롭게 살아갑니다.

세 번째 성장 욕구도 충족되기 어렵습니다. 학생들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1위라는 좋은 성적표를 받았지만 극심한 학업 스트레스를 겪고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신뢰가 무너지고 생존이 위협받는 두려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높은 성적, 상위권 대학, 고소득이 보장되는 안정된 직장, 여기에 모든 것을 다 바치는 학부모 문화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유발 하라리가 이야기한 두 번째, 세 번째 행복은 언감생심입니다.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학부모

내 아이를 공부시켜서 높은 성적, 상위권 대학, 안정된 직장을 갖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모두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요?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헌법은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설계되어 있거든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을 다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대단한 중요한 일입니다. 아울러 우리 자녀와 함께 더 안전하고(생존), 더 따뜻하고(관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성장) 세상으로 만드는 것은 부모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입니다. 세상이 무너지는데 우리 아이만 잘 살아남을 수는 없습니다. 좋은 부모는 좋은 시민이어야 합니다.

보다 더 중요한 건 맑은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존에 대한 두려움으로 성적과 대학과 안정적 직장만을 쫓을 것이 아니라 맑은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봐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사랑으로 연결되고 가정과 사회에서 행복한 경험을 더 많이 하면서 이 세상은 살만한 곳임을 충분히 만끽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르쳐야지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요.

이것이 바로 부모의 전문적인 역할입니다. 자녀를 보호하고(보호자) 사랑으로 연결되고(양육자) 삶을 가르칠 수 있는(교육자) 지혜와 능력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 공부하고 연습할 주제입니다. 자녀와 즐겁게 노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그리고 시국을 감안해 공부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헌법과 우리나라에 대해 이야기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아이는 행복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자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일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민주시민으로 자라야 하니까요.

정유진 세종 온빛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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