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난 문화재 3800점 회수
경찰, 불법 매매ㆍ은닉한 18명 적발
고서류 등 국보급 다수 포함
明법전 대명률은 허위신청에도
문화재청에서 국가보물 지정해줘
문화재 총체적 관리 부실 드러나
전국 각지의 고택, 산성, 사찰 등에서 국보급 문화재와 국가보물, 삼국시대 도기 등 문화재 수천점을 훔쳐 매매하거나 숨긴 문화재사범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문화재 중에는 동의보감 초간본, 명나라 서적 대명률(大明律) 등 국보급도 다수 포함됐다. 특히 문화재청은 장물시장에서 거래된 대명률을 매매업자의 말만 믿고 국가보물로 지정, 허술한 문화재 관리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경기북부지방경찰청은 전국을 돌며 문화재를 훔친 도굴꾼 설모(59)씨와 문화재 절도범 김모(57)씨, 훔친 문화재를 사들인 사립박물관장 김모(67)씨, 매매업자 이모(60)씨 등 총 18명을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3일 밝혔다. 경찰은 2년여의 수사 과정 끝에 전국 각지의 사적지나 사찰에서 고서류 2,758점, 도자기류 312점 등 문화재 총 3,808점을 회수했다.
승려출신 문화재 매매업자인 이씨는 1999년 절도범 김씨에게 사들인 동의보감(전 25권)을 경북의 한 사찰에 2,000만원을 받고 판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당초 이 사찰에 동의보감을 유상기증한 것처럼 꾸몄으나 “유명 사찰에 장물로 의심되는 동의보감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의 조사 끝에 장물을 매입해 되판 사실을 밝혀냈다.
이씨가 은닉한 동의보감 초간본은 문화재청 감정 결과 국보 제319-1~3호로 지정된 동의보감 초판본과 동일 판본인 것으로 판명됐다. 보통 장물시장에서 1권에 2,000만원이상, 25권 전체는 10억원 이상 호가하나, 사찰에는 헐값에 팔아넘겼다.
한 사설박물관장은 장물 문화재를 매입해 문화재청으로부터 보물지정을 받아내기도 했다.
경북지역 한 사설 박물관장인 김씨는 2012년 장물업자 이모(69)씨에게 명나라 서적 대명률을 산 뒤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집안 보물”이라는 허위 신청서를 내 지난 7월 문화재청으로부터 보물 1906호로 지정 받았다. 대명률은 중국 명나라의 기본법전으로, 김씨가 보유하던 것은 1389년 명나라에서 편찬된 책을 판각해 인쇄한 것이다. 현재 중국에 남아있는 1397년 반포본보다 앞서는 희귀본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이후 4년간 자신의 박물관에 대명률을 전시까지 한 것으로 조사됐다.
문화재청은 국가보물 지정 당시 도난 문화재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경찰이 협조를 요청을 해오자 뒤늦게 합동단속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산성과 사찰 등지에서 문화재 수백점을 훔쳐 집에 보관하던 도굴꾼들도 붙잡혔다. 설모씨는 2001년 충북 보은의 한 산성에서 도자기 등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설씨의 집을 압수수색해 삼국시대 도기, 고려시대 청자 등 총 562점의 문화재를 회수했다.
독립운동가 이상화 시인 일가의 유물을 매입해 은닉한 매매업자들도 검거됐다. 경찰은 이들 주거지에서 관련 유물 3,221점을 되찾았다.
경찰은 “문화재 절도범들은 대부분 훔친 문화재를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최소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년간 보관하다 장물 시장에 내놓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문화재 중 동의보감이나 대명률의 경우 책의 원래 주인을 숨기기 위해 훼손한 흔적도 발견됐다”고 말했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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