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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는 ‘여성 리더십’ 실패? 성차별 발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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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는 ‘여성 리더십’ 실패? 성차별 발언 논란

입력
2016.11.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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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측근 최순실씨. 서재훈 기자·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측근 최순실씨. 서재훈 기자·청와대사진기자단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2일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최순실 게이트는 이제 시작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최악을 달리고 있는 가운데, 이 사건을 다루는 언론과 정치인, 그리고 사람들의 말 속에선 두 사람의 국정농단에 대한 당연한 비판을 넘어 성별을 부각시키는 차별적 언사가 난무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었던 박 대통령은 어느새 ‘실패한 여성 러더십’의 대표가 되었고, 최씨는 ‘무식하고 돈만 많은 강남 아줌마’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강남아줌마”, “근본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 최순실

먼저 이번 게이트에서 두드러진 것은 ‘비선실세’ 최순실씨를 비하하는 말들이다. 그가 40년간이나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막후에서 국정을 농단해 왔음에도 그는 보수와 진보 진영을 가리지 않고 ‘강남 아줌마’로 호명됐다. 최씨의 서울 청담동 호화 빌라와 명품으로 가득 찬 신발장, 지난달 31일 검찰 출두 당시 벗겨진 신발 한 짝이 수십만원대의 명품 브랜드라는 사실은 끊임없이 주요 뉴스로 다뤄졌다.

지난달 31일 검찰에 출두한 최순실씨가 취재진에 밀려 입구로 들어가다 벗겨진 신발 한 짝.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검찰에 출두한 최순실씨가 취재진에 밀려 입구로 들어가다 벗겨진 신발 한 짝. 연합뉴스

정치인들도 최씨의 국정농단을 ‘막후 실세의 촘촘한 시스템 장악’으로 보기보단 ‘무식한 아줌마의 전횡’으로 치부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이 시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 촛불 집회’에서 한 연설에서 “박근혜는 이미 국민이 맡긴, 무한 책임져야 될 그 권력을 근본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에게 던져주고 말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이 시장의 단호한 연설이 ‘사이다’였다는 호평을 받은 것과 별개로 최씨를 ‘근본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로 지칭한 것은 비판을 받았다.

강남순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는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시장의 발언에 담긴 차별적 인식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강 교수는 “‘아녀자’란 (중략) ‘별 볼일 없는’ 결혼한 여자들, 한 인간으로서의 그 어떤 고유한 개별성도 지니지 못한 집단적 표지로서 사용되는 말”이라며 “가부장제 사회에서 ‘결혼한 남성’과 ‘결혼한 여성’이 가지게 되는 문화-정신적 가치는 매우 다르다. ‘결혼한 여성’은 사회문화적 자본(capital)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존재로 간주된다. ‘아녀자’에 상응하는 ‘아남자’와 같은 남성용어가 한국어에서 대중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영어로 ‘마녀 (witch)’에 상응하는 남성용어, 즉 ‘마남’이 없는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유독 여성을 향한 부정적인 가치를 이미 담고 있는 언어들이 남성중심적 사회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대중화되곤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9일 저녁 이재명 성남시장은 해당 발언에 대해 사과하는 트윗을 남겼다. 트위터 캡처
지난달 29일 저녁 이재명 성남시장은 해당 발언에 대해 사과하는 트윗을 남겼다. 트위터 캡처

박대통령의 실패=여성 리더십의 실패?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그의 무능과 실정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의 실패=여성 리더십의 실패’로 엉뚱하게 치환한 언론사 논설위원의 글도 나왔다. 2일자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 ‘여성 리더십의 약점’에서는 “최근 우리나라에선 여성 리더십의 위기가 사회 혼란으로 확대된 사례가 많았다”며 최순실 게이트를 대표 사례로 들었다. 박 대통령이 측근에게 권력을 나눠주고 국정을 농단한 원인이 ‘여성’의 ‘정서적 리더십’이란 약점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대통령 측근이 권력을 이용해 이권을 챙기고 부정을 저지른 여러 차례의 게이트 사건에서 그 원인으로 ‘남성적 리더십’이 거론된 적은 없었다. 이 칼럼은 또한 “자신만의 좁은 원칙과 독선에 갇혀 속 터지게 하는 여성 리더들은 심심찮게 많다”며 개인의 문제를 여성 리더 전반의 문제로 치환하기도 했다.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이러한 시각은 이념과 세대에 상관없이 빈번히 등장하고 있다. 미국의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누가 여성대통령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한국을 보게 하라”고 말했다는 거짓 정보 역시 여성혐오적 시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 발언은 한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트럼프가 이렇게 말하면 선거에서 이기지 않을까’라는 글과 함께 올린 이미지에 적힌 문장이었다. 이를 YTN과 한국경제TV 등이 검증 없이 전하면서 오보를 냈다.

이번 게이트를 ‘여성’의 실패로 돌리려는 움직임에 많은 네티즌들이 분노를 표하고 있다. “박근혜에게 투표한 사람들은 그가 여성이라서 뽑은 것이 아니라 박정희의 자식이어서 뽑은 것이 아니냐.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여성 대통령을 뽑은 것처럼 이야기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리더십을 성별로 구별하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실패한 정치인이 남성인 경우 ‘남성 리더십의 실패’라고 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국여성민우회의 홈페이지 게시글 '싸우는 우리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중에서.
한국여성민우회의 홈페이지 게시글 '싸우는 우리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중에서.

시민단체들도 여성혐오적 표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최순실 게이트를 ‘여성의 문제’라는 잘못된 프레임으로 볼 경우 사안의 심각성을 오히려 축소시킬 수 있다는 진단에서다.

알바노조는 지난달 31일 발표한 호소문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합니다’에서 “우리는 여성혐오를 하러 거리로 나가지 않았습니다”라며 “배후세력이 강남아줌마에 무당이라서 문제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더 낫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렇다면 고학력의 엘리트 남성이 똑같은 일을 했다면 괜찮은 문제인가요?”라고 물었다.

한국여성민우회도 지난 1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싸우는 우리는 부끄럽지 않습니다’는 글에서 “‘강남 아줌마’ 운운하는 여성혐오적 발화들과 ‘여성’ 대통령 개인의 스캔들 문제로 이 사건을 취급하려는 시각들도 우리는 거부합니다”라며 “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불합리한 권력과 폭력에 저항합니다”고 밝혔다.

박소영 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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