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께 朴 독대, 제안받아
책임총리로 정국 수습 의지 불구
거야 (巨野) 반대하면 국회 인준 불가능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정국의 구원투수로 지명된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야3당의 청문회 거부로 인선 절차도 밟지 못하고 낙마할 위기에 처했다. 국가적 위기 상황을 수습해보겠다는 의지에 따라 총리직 제안을 수락했지만, 총리 후보자로서의 입장 표명도 뒤로 미뤄야만 했다. 총리로서의 포부를 밝히지도, 그렇다고 이미 수락한 총리직을 다시 내려놓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김 후보자는 2일 청와대의 인사 발표 뒤 국민대 연구실에서 국무총리실 관계자들과 만나 향후 일정을 논의했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국회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는 총리 후보자 사무실을 차리기로 하고 이곳에서 오후 2시 소감 발표 계획도 잡았다. 하지만 야3당이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 청문회 전면 거부 방침을 밝히며 강력 반발하자 김 후보자 측은 기자회견 일정을 오후 3시 이후로 미뤘다.
김 후보자는 다시 오후 2시30분으로 일정을 잡았으나, 정작 현장에 나타나서는 “소감을 준비해 말씀 드리기 보다 많은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고만 언급하고 쏟아지는 질문에는 “내일 따로 시간을 만들어 말씀 드리겠다”고 답변을 피했다. 김 후보자는 다만 ‘대통령으로부터 책임총리 권한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게 있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있겠죠”라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이날 오후 국민대에서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지난 일요일께 대통령과 독대해 총리직을 제안 받았다고 전했다.
김 후보자가 입장 표명을 미룬 것은 야권의 반발로 총리 임명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 3당이 인사청문회를 거부하면 국회 인준은 불가능하다. 장관들과 달리 총리는 국회의 동의가 없으면 임명할 수 없다. 법률에도 없는‘국무총리 서리’ 라는 직책으로 총리직을 수행하는 편법이 동원되기도 했으나, 위헌 논란이 끊이지 않아 노무현정부 이후로는 사실상 폐지됐다.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마지막 강의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내가 대통령을 보호하려 나서지도 않았고 그럴 이유도 없다. 제가 방패막이 될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가 국회와 사전 협의가 없는 부분에 대해서도 “청와대가 했어야 될 텐데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라고 서운함을 표했다.
노무현정부에서 정책실장을 맡는 등 야권 인사로 분류되는 김 후보자가 난파 직전의 배에 올라 독배(毒杯)가 될 게 뻔한 총리직을 수락한 배경을 두고 뒷말도 적지 않게 나온다. 김 후보자 측 관계자는 “국가가 엄청난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애국심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제안을 거절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가 박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상당한 권한을 위임 받는 책임 총리를 제안 받으면서 국정 수습 의지를 굳힌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 후보자는 지난 1일 한 매체에 기고한 ‘국정 공백을 우려한다’ 는 제목의 칼럼에서 “(관중과 달리 프로는) 언제든 대신 들어가 치고 던지고 지도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며 “비판과 비난에다 야유만 하는 것은 프로가 아니다”고 적었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결과적으로 야권의 반발 수위를 제대로 예상하지 못한 셈이 됐다. ‘심판’ 역할을 맡고 있는 국회가 그의 등판을 불허하면, 아무리 능력과 의지가 있는 프로라도 경기 자체에 나설 수가 없다.
송용창 기자 hermeet@hankookilbo.com
조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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