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공주 헌정시·시굿선언… 시위를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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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공주 헌정시·시굿선언… 시위를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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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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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강한 밀레니얼 세대

물리력 행사 대신 퍼포먼스

첨단매체로 소통하며

즐기면서 공공목표 달성

지난달 31일 한국예술종합학 학생들이 서울 성북구 본교에서 최순실 게이트 사태와 관련 별신 굿 형태로 '시굿선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학생 500명이 속속 모여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기 위한 자리였다. 하지만 시국선언의 비장함 대신 역동적인 춤사위의 흥겨움이 교정을 가득 메웠다. 붉은색 무속인 복장을 한 학생들이 방울과 부채를 위아래로 흔들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참석자들은 풍물 장단에 맞춰 박수를 보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시국선언이 아니라 시굿선언”이라는 웅성거림이 들렸다. 재학생 정모(26)씨는 2일 “시국선언하면 딱딱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생각했는데 굿판 공연에 담긴 메시지를 통해 오히려 정치 현안의 문제점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가 주도하는 대학가 집회ㆍ시위문화가 바뀌고 있다. 요즘 대학생들의 시위에는 민중가요가 없다. ‘민주주의’를 바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꽉 짜인 스크럼 대신 신명 나는 놀이가, 과격한 구호를 대체한 번뜩이는 풍자가 학생들을 강의실 밖으로 이끈다.

전국 100여개 대학으로 번진 시국선언이 대표적이다. 학교 특성을 반영한 재기발랄한 선언문은 보는 이의 감탄사를 자아낸다. 한국외국어대는 시국선언문을 영어 중국어 힌디어 등 9개 언어로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각 학과 대표 학생들은 지난달 28일 “국가의 뿌리를 흔드는 행위에 박 대통령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각국 언어로 번역한 선언문을 낭독했다. 성균관대도 1905년 11월 황성신문에 실린 장지연의 논설 ‘시일야방성대곡’을 패러디해 “오천만 꿈밖에 어찌하여 비선 실세 개입이 사실로 나타났는가”라며 최순실 게이트를 풍자했다. 시굿선언을 기획한 황예정 한예종 총학생회장은 “문화예술 유산인 전통문화가 사이비종교와 엮여 부정적으로 다뤄지는 현실을 알리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페이스북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계정 캡쳐

극심한 학내 분규로 몸살을 앓은 이화여대 학생들도 경찰 대치 상황에서 걸그룹 소녀시대의 노래를 합창하거나 최씨 딸 정유라(20)씨의 부실 리포트에 쓴 문장을 패러디해 ‘달그닥 훅’ 같은 위트있는 피켓을 들었다. ‘OOOO OO하는 OOO는 물러나라!’ 등 4박자 피켓 대신 ‘#하야해 박근혜’처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해시태그에 운율을 맞춘 문구가 기자회견 현장을 휩쓰는 것도 새로운 흐름이다. 1일에는 현 시국을 고전소설이나 고전시에 빗대 우회적으로 비판한 ‘공주전(연세대)’, ‘박공주 헌정시(고려대)’가 SNS를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1980~90년대 머리띠를 두르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열창했던 중ㆍ장년층에게는 신세대의 시위문화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87년 민주항쟁에 참여했던 회사원 허모(52)씨는 “메케한 최루가스 냄새가 대학 교정을 뒤덮었던 때를 떠올리면 요즘 시국선언은 시위인지 놀이인지 헷갈릴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형식적 가벼움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다. 주제를 벗어난 내용에는 가차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등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기도 한다. 고려대는 지난달 27일 ‘백남기는 죽이고 최순실은 살렸다’라는 선언문을 발표하려다 2시간 전 갑자기 취소했다. 최씨 국정농단 사태와 무관한 사회현안을 왜 끼워 넣었냐는 지적 때문이었다. 서울대도 운동권 분위기를 풍기는 어구가 포함된 선언문에 구성원들이 반발하자 내용을 수정했다. 재학생 장모(20ㆍ여)씨는 “‘민중해방의 불꽃’ 같은 단어는 오히려 국민의 지지를 반감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청년 시위문화의 변화는 개개인이 여론의 주체가 된 수평적 소통 문화가 자리잡은 데 따른 현상이란 분석이다. 청년단체 ‘청년하다’의 유지훈 공동대표는 “예전처럼 말로써 사안의 엄중함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독특한 학교 문화와 기풍을 담아 일반 시민의 결집을 이끌어 내고 있다”고 말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도 “과거에는 숭고한 희생을 한 소영웅을 중심으로 공동체 우선의 엄숙주의가 집회ㆍ시위를 지배했다면 독특한 개성으로 무장한 요즘 젊은이들은 동등한 위치에서 첨단 매체로 소통하며 공공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고 진단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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