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지도부도 언론 보고 알아
김병준 추천한 정진석 측도
“바지 위에 속옷 입은 격” 비판
김무성 “거국중립내각에 반해”
이정현 “국정 공백 막아야”
일부 강성 친박만 朴 옹호
2일 내놓은 박근혜 대통령의 ‘김병준 총리 카드’가 야당까지 갈 것도 없이 여당 내에서 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라는 요구가 빗발치는 마당에 야당의 의견을 구하는 모양조차 갖추지 않은 ‘기습 지명’이 화근이었다. 새누리당 지도부도 언론이 보도를 하고 나서야 지명 사실을 알게 돼 체면을 구겼다.
당 차원에서는 일단 염동열 수석대변인 명의로 “난국 수습과 국정정상화를 위한 개각”이라며 환영 논평을 냈다. 또 ‘박 대통령이 사실상 2선으로 후퇴한 것’이라는 청와대 설명에 대해서도 “자리를 연연하기보다 국가와 국민의 안위, 경제를 위해 2선까지도 물러나겠다고 선택한 것”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대선 잠룡들과 비박계는 일제히 비토하고 나섰다. 김무성 전 대표는 이날 오후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와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총리를 지명한 건 국민 다수의 뜻에 반하는 길”이라며 총리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 김 전 대표는 “특히 경제부총리와 국민안전처 장관까지 내정한 것은 거국중립내각은 물론 책임총리제도 아님을 의미한다”며 이날 청와대가 내놓은 책임총리 주장도 반박했다.
유승민 의원도 이날 오전 대표ㆍ최고위원ㆍ중진의원 연석 간담회에 참석했다가 나가는 길에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여당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데, (사전 의견 교환도 없이) 발표가 돼 좀 당혹스럽다”며 “청와대에서 야당의 동의를 구하는 노력도 (사전에) 없었나 보다”고 당황스런 기색을 내비쳤다.
다른 잠룡들도 김 후보자 지명 과정을 일제히 비판했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페이스북에 “야당과는 물론이고 여당과의 소통도 없는 일방적 인사발표는 위기극복의 해법이 아니다”며 “지금은 인사를 할 타이밍이 아니라 대통령의 진솔한 고백과 책임 인정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지사, 김문수 전 경기지사도 모두 여야와 사전 협의 없는 총리 지명에 우려를 표시했다.
당 지도부는 언론의 속보를 보고서야 김 후보자를 지명한 사실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정현 대표는 이날 “총리 후보자 지명 사실을 사전에 알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이날 오전 회의 중간에는 이 대표에게 비서가 쪽지를 전해주는 장면이 목격돼 총리 후보자 지명 사실을 전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박 대통령의 선택을 적극 엄호했다. 이 대표는 “만약 야당이 김 후보자를 부인한다면 그건 노무현 정부를 부인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국가와 국민을 중요하게 여기고 국정 공백이 있어선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사람을 보고 모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8일 박 대통령과 독대에서 김 후보자를 후보군의 하나로 추천했던 정진석 원내대표도 당혹감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과의 협의 없이 이뤄진 총리 후보자 지명은 박 대통령이 국회의 거국중립내각 요구를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정 원내대표 측은 “사람이 아니라 과정이 문제다”라며 “야당과 협의하는 모양새도 갖추지 못해 마치 바지 위에 속옷을 입은 격”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를 비롯해 소수 강성 친박계를 제외하면 여당에서도 김 후보자 지명에 비판적인 의원들이 많아 향후 인사청문회 통과도 장담할 수 없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한편 김 후보자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지만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이 논문 표절 의혹 등을 제기하며 반대해 13일 만에 스스로 물러난 전력이 있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조차 부총리에도 부적격이라고 했던 인사를 총리로 받아들여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는 자조가 흘러나오고 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김청환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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