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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똥바다와 병신오적(丙申五賊)

입력
2016.11.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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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망친 게 박근혜-최순실만인가

친박ㆍ새누리-재벌-검찰-국정원-언론

농단 돕고 방관한 무리도 단죄해야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그리고 그들의 충실한 하수인이었던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 하지만 나라를 망가뜨린 것이 그들만일까.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그리고 그들의 충실한 하수인이었던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 하지만 나라를 망가뜨린 것이 그들만일까. 한국일보 자료사진

해질녘 책가방 멘 채 거리로 나선 중학생들의 손에 “진실된 사과와 진실된 처벌을 요구한다”란 팻말이 들려 있다. 하루하루 버텨내기도 힘겨운 서민과 젊은이들이 팍팍한 살림살이 걱정, 목전의 취업 걱정마저 잠시 접고 분노를 꾹꾹 눌러 담아 “대통령 하야”를 외치고 있다. 졸지에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처지를 형용할 길 없어 ‘을씨년스럽다’는 말을 탄생케 한 을사늑약(乙巳勒約) 당시 민초들의 비통함이 이러하였을까.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나쁜 감정들이 뒤엉킨, 사전에 실린 그 어떤 단어로도 담아내기 어려운 만신창이 나라 꼴과 이 깊은 모멸감은 훗날 ‘병신년(丙申年)스럽다’란 말로 불리지 않을까.

단언컨대 이 망국적 사태의 본질은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아니다. 국민이 투표로 뽑은 대통령의 ‘헌정 유린’이 핵심이다. 최씨와 그 일가의 전횡과 관련해 속속 드러나는 숱한 증거들은 정확히 박근혜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이미 정치적, 도덕적 사망선고가 내려졌건만, 그는 보란 듯이 개각을 단행했다. “헬렐레한 총리 한 명 세우고 각료 몇 명 교체할 것”이란 김종인 의원의 예측 그대로다. ‘무늬만 대통령’의 여전한 독단은 권력을 사유화해 나라를 망가뜨린 주범이 누구인지 더 똑똑히 드러내줄 뿐이다.

이 사태의 더 중한 본질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다. “이게 나라냐”는 탄식이 함축하듯, 국가 시스템의 총체적 붕괴다. 박근혜가 물러나고 최씨 일가와 하수인들 몇을 단죄한다고 속속들이 곪은 나라가 바로 설까. 결코 아니다. 국정을 논할 자격은커녕 제 머리로 생각할 능력과 제 뜻을 표현할 언어조차 갖지 못한 자를 권좌에 앉히고 멋대로 헌정을 유린하도록 돕고 방관해 온 이들에게도 철저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얼른 꼽아도 다섯 손가락이 접힌다.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 김지하 시인이 통렬히 고발한 박정희 시절 ‘오적’(재벌ㆍ국회의원ㆍ고급공무원ㆍ장성ㆍ장차관)에 빗대, 나라를 구린내 진동하는 똥바다로 만든 이들을 ‘병신오적(丙申五賊)’이라 불러 마땅하다.

첫 도둑은 친박을 위시한 새누리당 무리다. ‘친박’에 ‘진박’, ‘진박 감별사’를 자처하던 이들이 그와 영혼까지 공유한 샴쌍둥이의 존재에 대해 “모른다” “몰랐다” “그 정도인 줄 몰랐다”며 가롯 유다 흉내를 내고 있다. ‘반박’, ‘비박’이라고 다를까. 세월호 유족을 능멸해가며 ‘사라진 대통령의 7시간’의 비밀을 덮고는 최씨 딸 정유라씨 비호에는 열일 제치고 나섰던 이들이다. 세 치 혀로 국민을 우롱하는 것도 천벌 받을 일이지만 진짜 몰랐다 해도 그 무능함만도 정치판을 떠나야 할 이유로 충분하다.

재벌 역시 공범이다. 최씨와 하수인들 몇 마디에 돈가방 싸 들고 달려갔다. 보험이든 떡고물이든 바라고 얻을 것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피해자라고? ‘오적’에서 ‘첫째 도둑’으로 호명되던 시절부터 이어온 정경유착의 고리가 여전히 유효함을 드러내는 궤변일 뿐이다.

정권 내내 정치적 사건의 ‘흥신소’ 노릇만 해온 검찰은 어떤가. 검찰이 그나마 기여한 게 있다면 뒤늦게 드러난 전현직 검사들의 비리가 정운호 도박에서 비롯된 사건이 ‘헌정 유린’ 사태로 비화하는 고비고비마다 ‘나비효과’를 일으켰다는 것뿐이다. 압수수색도 소환도 여전히 뒷북만 쳐대는 검찰에 대통령을 포함한 엄정한 수사를 기대할 수 있을까.

국가정보원도 오적에서 빼놓을 수 없다. 지난 대선 당시 댓글공작 사건을 철저히 파헤치고 명실상부한 국가정보기관으로 거듭났다면 작금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언론도 죄인이다. 한 언론학자의 말처럼 “타락한 권력에 대한 증오가 언론의 가장 오래된 그리고 고유한 사회적 기능”임을 많은 언론이 잊거나 외면해왔다. 이제라도 경쟁하듯 진실 캐기에 나선 것은 환영할 일이나 일각에선 하이에나식 보도 행태가 난무하는 걸 보며 걱정도 앞선다. 과연 언론은 ‘오로지 진실만을!’이란 태도를 계속 지켜 나갈까.

오적을 단죄하려면 철저한 진상 규명이 우선이다. ‘병신년스럽다’는 치욕적인 언어로 오늘이 기록되지 않으려면 헌정 유린의 몸통인 대통령부터 반드시 수사해야 한다.

이희정 디지털부문장 ja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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