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징계로 고려대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학교 생활을 하게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2일 고려대 여학생위원회에 따르면 2년 전 고려대 학생 서모(24)씨로부터 강제 추행을 당한 A씨와 위원회는 지난달 21일 ‘잘 살 것이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학내에 붙였다. 해당 대자보에는 A씨가 가해자인 서씨와 이번 학기부터 학교 생활을 함께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정은 이렇다. 서씨는 지난 2014년 10월 학교 축제 뒤풀이 자리에서 술을 마신 뒤 A씨와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만취한 A씨의 얼굴과 가슴 등을 강제로 만졌다. 또 서씨는 A씨를 서울 성동구청 부근 모텔 앞에서 내리게 한 뒤 강제로 끌고 들어가려 했고,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언행과 욕설을 했다.
혐의가 인정돼 재판에 넘겨진 A씨는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으나 항소해 벌금 700만원에 성폭력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로 감형 받았다. 당시 서울북부지법은 “피고인이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했지만 들뜬 분위기에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이고, 피고인이 피해자와 다시 마주치지 않을 방편으로 의무경찰 입대를 신청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고려대 상벌위원회도 이 같은 이유로 서씨에게 2015년 2학기까지 두 학기 정학 처분만 내렸다.
문제는 서씨가 실제 의무경찰에 입대하지 않고 징계 기간이 끝난 지난 9월 고려대에 복학했다는 점. A씨는 이 같은 사실을 학기시작하기 며칠 전 지인을 통해 듣게 됐다. A씨는 대자보에서 “서씨가 자숙 기간을 가지라는 양성평등센터 지시를 어기고 동아리 활동을 하는 등 교내를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이에 위원회는 해당 사건과 관련해 재심의를 요청했으나, 학교 측은 징계가 확정되고 집행된 사안이라 재심의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위원회는 교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사례를 모아 대응하기 위해 ‘학내 성폭력 피해자 네트워크’를 구성할 방침이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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