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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곧 짐승인 곳, 희망은 없다

입력
2016.11.02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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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연주의로 명명해도 좋을 김이설의 소설들은 너무 독하고 추악해 외면하고 싶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그려왔다. 이천희 제공
신자연주의로 명명해도 좋을 김이설의 소설들은 너무 독하고 추악해 외면하고 싶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그려왔다. 이천희 제공

“약한 건 쓸모 없어” 교훈 따른 삶

먹이사슬 그 자체인 인간사 그려

‘오늘처럼 고요히’에 실린 김이설의 소설들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하기는 힘들다. 서사가 복잡하다거나 문체가 화려해서가 아니다. 작품이 다루고 있는 현실이 너무 끔찍해서다. 살인과 자살과 폭행과 겁탈, 도를 넘은 생활고와 통제되지 않는 본능 같은 것들이 날것 그대로 드러나는 세계가 김이설의 세계다.

이 세계에 어떤 명칭을 붙여야 한다면 아마도 ‘신자연주의’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알다시피 클로드 베르나르와 에밀 졸라 등으로 대변되는 자연주의의 전제는 다른 생물들의 먹이사슬에서 일어나는 일이 인간 세계의 먹이사슬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이 책에 실린 가장 끔직한 단편 ‘미끼’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르치는 교훈이 그것이다. “약한 건 쓸모 없다. 쓸모 없는 건 죽어야지. 죽지 않고 버틴 놈만 사는 거야.” 더러 극단적 상황을 피해가는 작품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처럼 고요히’에 실린 모든 작품들은 대체로 저 교훈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럴 때 남성 인물들은 그저 ‘수컷’이 되고 여성 인물들은 그저 ‘암컷’이 된다.

게다가 일종의 결정론 같은 것이 김이설의 소설을 지배한다. 애초에 세계는 그렇게 생겨 먹었고, 그런 세계에 전망과 낙관은 없다. 짐승 ‘같은’ 삶이 아니라 차라리 짐승과 인간의 비식별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쓰는 것, 그리고 그런 상황은 선험적이어서 전혀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쓰는 것, 김이설은 그런 작업을 소설가로서의 과업으로 삼은 작가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이 김이설의 소설을 우리 시대에 대한 중요한 기록으로 읽게 한다.

돌이켜보면 등단 이후 김이설의 소설들은 항상 그랬다. 이 작가는 매번 현실의 가장 추악한 면, 분명 존재하지만 우리가 애써 고개를 돌려 버림으로써 그 존재 자체를 지워버려야만 했던 지점에서 소설을 써왔다. 그의 소설은 항상 독했고, 알고 싶지 않은 것을 말했고, 그럼으로써 독자를 불편하게 했다. 그랬으니 이제 와서 새삼스레 그의 소설들이 우리 현실에 대해 알려주는 바가 많다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호들갑이 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변화는 그간 존재했으나 눈에 띄지 않았던 것들을 보다 선명히 전면에 부상시키기도 하는 법이다. 이즈음 신문의 사회면을 가득 채운 경악스러운 사건들을 접하다 보면, 이 세계가 딱히 김이설의 소설 세계보다는 나은 편이라고 말하기 힘들어질 때가 많다. 소위 ‘인간성’의 범위를 훌쩍 넘어서는 일들이 우리 눈앞에서 버젓이 상연된다. 게다가 이른바 ‘금수저 흙수저’ 담론에서 보듯, 그런 상태가 개선될 기미 또한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그럴 때 자연주의는 귀환하는 것이리라.

아니나다를까 이즈음 새로 등장한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읽다 보면, 이제 김이설이 홀로 외롭게 작업하는 작가가 아님을 실감하게 될 때가 많다.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 세계가 흡사 지옥처럼 묘사되는 일은 이제 예외가 아니라 상례가 되어 가는 느낌이다. 요컨대 자연주의는 20세기 초반을 짧게 풍미하다가 사라질 한시적인 문예사조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세계가 인간과 짐승의 구별이 사라지는 비식별역이 되어 버리는 시점이라면 언제라도, 문학 또한 생물학과 구별하기 힘들어지는 일을 감수해야 한다. 김이설은 오래 전부터 그 고통스런 작업을 묵묵히 수행해 온 예외적인 작가다.

김형중ㆍ문학평론가

작가 약력

1975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열세 살’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제1회 황순원신진문학상, 제3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경장편소설 ‘나쁜 피’, ‘환영’, ‘선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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