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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경제, 차라리 법원이 나서라

입력
2016.11.02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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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이 가계를 통해 국민경제에 기여하는 길은 크게 둘이다. 건축경기가 좋아져 일자리가 많아지면 소득이 올라가서 소비가 느는 것이 하나고,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재산이 그만큼 불어나 소비가 느는 것이 하나다. 손쉬운 만큼 후유증도 큰 정책인데, 현 정부에선 유독 후유증이 커 보인다. 일자리의 질은 낮고, 재산 증가 효과는 융자로 사라지고, 세입자는 오른 주거비용 때문에 돈이 모자라는 형편이다. 오히려 유효수요(실제 돈을 쓸 능력이 있는 수요)가 줄어드는 셈이다.

부동산 정책의 중심이 아파트라는 것도 문제다. 지금까지 아파트 재건축은 오르는 땅값, 높은 용적률, 충분한 수요가 있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이 조건들을 충족하기 어렵다. 땅값은 충분히 올랐고, 용적률도 더는 올리기 쉽지 않다. 인구감소는 수요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빚으로 아파트를 떠받치는 것도 한계에 봉착했으니, 이제 후유증만 남은 셈이다. 재건축비용을 확보하지 못하면 아파트는 슬럼이 되고, 머지않아 큰 재앙으로 우릴 덮칠 것이다. 더 이상 부동산에서 경제정책의 답을 찾아선 안 된다. 오히려 부동산의 연착륙을 고민하면서, 다른 정책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유승민 의원의 말을 보면 상황이 위중하다. “부총재 주재 경제장관회의를 하는데 고작 장관 3명이 오고 수석이라는 사람은 오지도 않고 뭔가 이상하지 않느냐. 나라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여기에 최순실 사건까지 더해졌다.

정부는 마치 로봇처럼 법인세 감면, 규제 혁파, 자유로운 해고, 낮은 임금, 낮은 이자율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공급을 중시하는 이런 정책들은 좀처럼 힘을 못 쓰고 있다. 응당 수요 중심의 경제정책을 찾아야 한다. 당장 해운과 조선도 수요측면을 면밀히 살폈다면 지금과 같은 지경에 몰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좀처럼 수요 중심의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우리 정치집단과 관료집단의 사고방식이 일본 제국주의와 오랜 독재에 길들여진 국가주의에 뿌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가계와 소비자는 안중에 없다. 여기에 신자유주의라는 망령이 지구를 뒤덮으며 보편화한 공급 위주 경제가 우리 정책당국의 눈을 더 흐리게 했다. 여기에 최순실 사건까지 터졌으니, 정부가 경제를 돌볼 상황이 아니다. 당장은 법원이라도 나서야 한다.

예를 들어 전기누진세를 보자. 2012~2014년의 3년간 20대 대기업은 전기를 원가 이하로 받아 써 연간 1조원 이상 이익을 봤다. 대신 한전은 3조5,000억원의 손실을 보았는데, 이 손실을 국민이 메우고 있다. 시민단체가 이 문제점을 법원에 호소했지만, 법원은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이런 판결이 나온 배경에는 ‘법의 개별적 정의(正義)’보다 ‘법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우리 법원의 풍토가 있다. 여기에도 국가주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말이 추상적이니 설명을 덧붙이면, 가난한 소비자에게서 빼앗은 돈으로 재벌의 전기료를 냈으니, 그 돈을 국민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법의 정의’에 맞지만, 재벌이나 한전이 망하면 ‘사회의 안정’이 깨지니 가난한 소비자가 손해를 보라는 식의 ‘정의에 맞지 않는’ 판결을 한 것이다.

문제는 이래선 법원이 추구하는 법의 안정성이 깨진다는 것이다. 사회 안정이라는 명목으로 내린 정의롭지 않은 판결은 양극화를 강화하여 사회 안정을 흔들고, 유효수요까지 없애 경제를 마비시킨다. 취업자의 절반이 200만원 미만의 월급을 받는다. 알바가 직업이 되면서 개인소득은 계속 줄어왔다. 국민이 대납한 돈만 돌려줘도 매년 1조원 가까운 유효수요가 생긴다. 당연히 경제는 훨씬 활력을 찾을 것이다. 최순실 사건에서처럼 법의 정의가 지켜지지 않을 때 오히려 사회 안정은 깨진다. 최순실 사건은 국가주의가 부른 비극이다. 우리 사회에서 법의 안정성과 법의 개별적 정의는 충돌하지 않는다. 판사는 판결 전에 경제원론이라도 다시 한 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상현 한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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