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문 NC 감독. /사진=한국스포츠경제 DB
[창원=한국스포츠경제 김지섭] 정상 고지가 보이는데 닿을 듯 닿지 않는다.
9번째 포스트시즌에 도전했고, 마지막 문턱 한국시리즈까지 4차례 올랐지만 하늘은 김경문(58) NC 감독을 자꾸 외면한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전승 우승 사령탑 호칭만큼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싶지만 '2등 감독' 꼬리표를 떼기가 참 힘들다.
김 감독은 올해 어느 때보다 우승을 간절히 원했다. 그는 "야구 2등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2등을 하면 가슴이 매우 아프다"며 "2등 타이틀을 벗겨보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상대가 너무 강했다.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두산에 내리 졌다.
김 감독은 연장 11회 접전 끝에 0-1로 패한 1차전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숱한 득점 기회를 무산시키고 11회말 오재일의 끝내기 희생 플라이로 허무하게 패한 뒤 "두산이 실전 감각이 떨어진 탓에 점수를 내지 못했다"며 "그래서 꼭 가져갔어야 하는 한 판이었는데 큰 경기를 놓쳤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기선 제압에 실패한 NC는 이후 실전 감각을 찾은 두산에 2, 3차전도 연이어 내줬다.
이로 인해 김 감독은 초라한 한국시리즈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지난 1일 열린 3차전까지 두산과 NC에서 지휘봉을 잡은 기간 한국시리즈 통산 성적은 3승15패다. 더욱 가슴 아픈 기록은 잠실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10전 전패다. 두산 감독 시절이었던 2005년 삼성과 한국시리즈 3~4차전, 2007년 SK와 한국시리즈 3~5차전, 2008년 SK와 한국시리즈 3~5차전에 이어 올해 두산과 한국시리즈 1~2차전까지 잠실 10연패다.
김 감독은 프로야구에서 손꼽히는 명장이다. 1982년 OB(현 두산)의 주전 포수로 원년 우승을 차지했고, 1991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이듬해 미국 애틀랜타에서 지도자 연수를 떠나 2년간 공부한 뒤 1994년 삼성 배터리 코치로 부임했다. 1998년부터는 친정 두산에 돌아와 배터리 코치를 했고, 2003년 10월 두산 감독으로 취임했다.
김 감독은 부임 첫해였던 2004년 '홈런 군단' 두산에 '발 야구'를 이식하며 전년도 7위에 그쳤던 팀을 3위로 끌어올리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과감한 주루 플레이와 물 샐 틈 없는 수비 그리고 선수를 믿는 뚝심으로 2011년 6월 지휘봉을 내려놓기 전까지 6차례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3번의 준우승을 차지했다. 2012년부터는 신생 팀 NC 감독을 맡아 2013년 1군 첫 해 9개 팀 중 7위에 올려놓고 2014년 3위, 2015년 2위, 2016년 2위로 3년 연속 '가을 야구'를 경험했다.
김 감독은 정규시즌 동안 뚜렷한 성과를 낸 반면 단기전에만 들어가면 약해졌다. 2005년 처음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을 때는 삼성에 4전 전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2007년에는 SK에 먼저 2승을 거두고도 4연패했고, 2008년에도 1차전 승리 후 4연패로 고개를 숙였다. NC에서도 2013년 LG에 준플레이오프 패배, 2014년 두산에 플레이오프 패배로 고배를 마셨고, 계약 마지막 해인 올해 대권 기회를 다시 잡았지만 '한국시리즈 트라우마'를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2등은 아프다"라는 김 감독의 말이 또 한번 가슴에 사무친다.
창원=김지섭 기자 onion@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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