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의 이기형(42) 감독대행은 지난달 23일 열린 K리그 클래식 광주FC전을 앞두고 베트남 용병 르엉 쑤언 쯔엉(21 ㆍ인천 유나이티드)을 선발 명단에 집어넣은 뒤 ‘둘만의 작전시간’을 가졌다. 이 감독대행의 주문은 간결하고 명확했다. “그냥 마음껏 뛰어 봐. 책임은 내가 진다.”
이 ‘마법의 한 마디’는 그간 팀 내에서 기회를 잡지 못하고 위축돼 있던 쯔엉을 춤추게 했다. 쯔엉은 이날 광주전과 29일 포항전에 연속 선발 출전하며 팀의 신바람 2연승에 힘을 보탰다. 사실 이 감독대행에게도 ‘쯔엉 선발’카드는 모험이었다. 팀은 강등권에서 허덕였고 쯔엉은 그때까지 K리그 클래식 무대서 검증되지 않은 선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간 뛰지 못했던 선수들도 준비가 돼 있다면 똑같이 기회를 주겠다”고 공언했던 이 감독 대행이 쯔엉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쯔엉은 지난달 6일 베트남에서 열린 북한과의 A매치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면서 경기 최우수선수로 선정되는 등 차근히 자신의 기량을 입증했다.
쯔엉은 31일 본보와 인터뷰에서 이‘둘만의 작전시간’이후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지난해 말 K리그 최초의 베트남 용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인천 유니폼을 입었지만 그에겐 항상‘마케팅용 영입선수’란 수식어도 따라 붙었다. 쯔엉은 “솔직히 처음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마케팅용 선수’란 수식어를 떼는 법은 따로 없었다. K리그의 수준에 실력을 입증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K리그에서 요구되는 능력은 베트남 리그 시절과는 차원이 달랐다. 쯔엉은 “한국의 훈련 강도가 생각보다 너무 높았다”며 “체력을 바탕으로 한 압박 수비가 베트남 리그보다 훨씬 강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성실히 훈련해가며 한국 선수들과 자신의 실력 격차를 좁혔고, 지난달 북한과의 A매치 때 ‘K리거의 힘’을 뽐냈다. 그는 “베트남 국가대표로 경기를 뛰며 한국에서 기량이 많이 좋아졌다는 걸 느꼈다”면서 “특히 압박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워 베트남에 가니 북한과 A매치는 마치 연습경기처럼 느껴졌다”고 전했다. 그가 베트남에 있는 동료들에게도 K리그 진출을 강력히 추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쯔엉은 “리그 최종전 다음날인 6일 베트남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다”고 했다. 19일부터 필리핀과 미얀마에서 열리는 ‘2016 동남아시아축구연맹(AFF) 챔피언십’에 참가하는 조국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인천이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될 경우 쯔엉은 출전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쯔엉에게 남은 올해 K리그 경기는 단 두 경기. ‘강등 단두대’에선 벗어났지만 강등권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선 2일 수원삼성, 5일 수원FC 등 비슷한 처지의 팀들과 맞대결에서 꼭 이겨야 한다. 쯔엉은 “K리그 클래식 잔류는 가장 큰 목표”라며 “남은 두 경기에 온 힘을 쏟아 강한 인상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정진욱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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