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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를 보며 설기현이 생각나는 이유

입력
2016.11.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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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가 정해성(58) 대한축구협회 전 심판위원장의 축구칼럼 ‘유로기행’을 비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정 위원장은 국가대표 코치와 프로 감독을 역임한 베테랑 지도자로 최근 축구협회 심판위원장에서 물러나 현재 유럽에서 축구 연수 중입니다. 3탄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는 김진수(24ㆍ호펜하임) 이야기입니다.

독일 분데스리가 호펜하임의 홈구장 라인 넥카 아레나에서 김진수(오른쪽)와 함께. 사진 속 김진수는 웃고 있지만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린 그의 얼굴에는 독기가 가득했다고 한다. 정해성 제공
독일 분데스리가 호펜하임의 홈구장 라인 넥카 아레나에서 김진수(오른쪽)와 함께. 사진 속 김진수는 웃고 있지만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린 그의 얼굴에는 독기가 가득했다고 한다. 정해성 제공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을 달려 유서 깊은 도시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분데스리가 호펜하임의 홈 구장이 있다. 한때 ‘포스트 이영표’라 불리며 국가대표 왼쪽 수비 주전자리를 꿰찼다가 요즘 주춤한 김진수의 소식이 궁금했다. 지난 달 30일(한국시간) 그와 함께 호펜하임-헤르타 베를린 경기를 지켜봤다. 90분 내내 우리는 거의 말이 없었다. 그라운드를 누벼야 할 선수가 관중석에 앉아 있으니 그 속이 오죽할까.

올해 초 호펜하임은 리그 현역 사령탑 최연소인 만 스물여덟의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을 선임했다. 구단 유스 팀을 이끌던 지도자라 자신이 육성했던 젊은 선수들을 중용한다. 그 바람에 김진수도 주전에서 밀렸다. 작년과 올해 코파아메리카 2년 연속 득점왕에 빛나는 칠레 국가대표 공격수 에두아르도 바르가스(27)도 비슷한 이유로 벤치 신세다. 김진수는 올 여름 이적하려고 했지만 나겔스만 감독이 말렸다. 그래 놓고 기회를 안 주니 무척 답답할 것이다. 호펜하임은 1-0으로 이겼고 리그 3위까지 올랐다. 쓸쓸히 일어서는 김진수의 눈에 독기가 가득했다.

2009년 국가대표 수석코치를 할 때가 생각났다. 당시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유럽파들이 꾸준히 경기 감각을 유지하는 지 늘 신경 썼다. 허정무(61ㆍ프로축구연맹 부총재) 대표팀 감독은 가끔 나를 유럽으로 보내 직접 확인해보고 오라고 했다. 게임에 못 뛰어 마음고생이 심한 제자들을 만나는 건 힘든 일이었다. 식사를 하며 살짝살짝 의중을 살폈다. 그 때는 국가대표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를 우선 확인했다. ‘뽑혀도 그만 안 뽑혀도 그만’인 선수도 있었다. 그런 선수는 발탁하지 않았다. 설기현(37ㆍ성균관대 감독)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프리미어리그 풀럼에서 만년 후보였지만 국가대표에 오면 몸 바쳐 뛰겠다는 의지가 대단했다. 허 감독은 이 말을 듣고 설기현을 대표에 포함시켰다. 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2008년 2월 투르크메니스탄과 월드컵 3차예선에서 2골을 터뜨리며 4-0 승리를 이끌었다. 본인도 살고 대표팀도 살린 케이스다. 김진수의 독기 품은 얼굴에 설기현이 ‘오버랩’됐다.

그 역시 보란 듯 재기할 거라 굳게 믿고 있었다. 언젠가 다시 태극마크를 달 거란 확신에 차 있었다. 김진수는 청소년 대표부터 늘 주장이었다고 한다. 감독들이 그에게 왜 완장을 맡겼는지 대화를 나눠보며 알 수 있었다. 매사 진중하고 열정적인 젊은이였다. 대표 선수들 사이에서는 “흥민이를 잡을 수 건 진수 뿐(손흥민과 김진수는 동갑 절친)”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돈다고 한다. 청소년 대표 시절부터 볼 좀 찬다는 공격수들이 수비 가담을 소홀히 하면 손흥민이고 누구고 간에 김진수가 가만두지 않았다고 들었다. 구자철(27)과 지동원(25ㆍ이상 아우크스부르크), 기성용(27ㆍ스완지시티)과 같은 선배들이 종종 전화해 격려해준다고 하니 다행이다. 김진수가 이 고비를 넘기고 다시 우뚝 서길 기대한다.

<전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ㆍ호펜하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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