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배종옥(52)이 첫 번째 책을 펴냈다. 배우로서 배우면서 살았던 30여년의 삶을 되돌아보며 쓴 자전적 에세이 ‘배우는 삶 배우의 삶’(마음산책)이다. 그는 지난달 28일 서울 동숭동 DCF대명문화공장에서 “굳이 책으로 펴내지 않더라도 나에 대한 정리의 의미로 글을 써서 갖고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이달 말 막을 올리는 연극 ‘꽃의 비밀’을 연습하고 있었다.
책에는 그가 고교 시절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부터 학교 선배의 권유로 탤런트가 됐던 사연, 연기를 못한다거나 기대감이 없는 배우라는 말을 들으며 했던 고민, 노희경 작가를 만나 새로운 연기에 눈을 뜨게 된 과정, 미국 유학을 떠나 공부하다 돌아왔던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어머니와 관계 같은 지극히 내밀한 이야기도 적었다.
이 책에서 어머니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노희경 작가다. 그는 “노 작가가 내 운명을 바꿔놓았다”고 했다. 노 작가의 작품인 드라마 ‘거짓말’(1998)을 만나기 직전은 그가 “배우 생활 최고 위기”라고 회고할 만큼 배우로서 위태했던 시기였다.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1995) 이후 눈에 띄는 출연작이 없었고 맡은 배역도 주로 아줌마 역할들이었다. 멜로 연기를 잘하지 못한다는 콤플렉스를 좀처럼 깨기 어려웠던 때였다.
배종옥은 윤여정의 주선으로 주인공에 황신혜를 염두에 두고 있던 노 작가와 표 PD를 만나 운명처럼 배역을 따냈다. 하지만 시작부터 노 작가와 호흡이 맞았던 건 아니다. 작품 초반 지나치게 강렬한 연기를 하는 바람에 노 작가와 표 PD가 따로 긴급회의를 할 정도였지만 그는 대사 한 단어부터 호흡, 몸짓, 눈빛까지 세심하게 분석하고 파고들며 호평을 끌어냈다.
노 작가의 다음 작품인 ‘바보 같은 사랑’에서 그는 또다시 물오른 연기력을 선보이며 그해 방송사에서 주는 연기대상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시청률이 60%까지 치솟았던 ‘허준’과 같은 시간대에 경쟁하는 바람에 성적이 좋진 않았어요. 하지만 이렇게 좋은 작품을 하면서 시청률과 대중의 평가가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됐죠. 어떤 작품을 하든 내가 그 안에서 살아 있다면 배우로 존재할 수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되면서 드라마의 시청률이나 영화의 관객 수에 연연하지 않게 됐습니다.”
배종옥은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은 절대 하지 않는 배우다. 욕을 먹더라도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고, 돈벌이가 안 되더라도 하고 싶은 건 한다. 드라마 ‘바보 같은 사랑’, 영화 ‘질투는 나의 힘’(2002)이 후자의 경우다. 책에서 그는 인간과 사랑, 가족에 대한 치열한 질문과 대답이 있는 작품을 선호한다고 설명한다.
배종옥은 스스로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공부하는 배우다. ‘거짓말’을 끝내고 연기를 다시 배우겠다며 미국 뉴욕으로 떠난 적도 있고, 2009년 고려대 신문방송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연극에도 꾸준히 출연하며 연기의 스펙트럼을 꾸준히 넓히고 있다. 최근엔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연극 ‘꽃의 비밀’에 출연하는 것 역시 자신의 약점인 코미디 연기를 파고들기 위해서다.
그가 하는 공부 중에는 ‘마음공부’도 있다. 노 작가의 권유로 법륜스님의 정토회에서 만난 방송계 지인들과 10년 전 시작했다. 모임엔 이제 나가지 않지만 여전히 하루도 빠짐 없이 108배를 한다. “마음공부를 하며 내가 괜찮은 인간이란 걸 깨닫게 됐어요. 그 전엔 나를 윽박지르고 못살게 했는데, 마음공부를 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니 나를 많이 사랑하게 되더군요.”
“계속 배우고 공부하는 과정에 있는 배우”라는 그가 생각하는 좋은 연기는 어떤 걸까. 그는 배우 고유의 느낌을 낼 수 있는 연기를 꼽았다. “메소드 연기가 강한 배우든 절제하는 연기를 하는 배우든 자신만의 느낌을 갖고 자기만의 색깔을 만드는 배우가 좋은 배우입니다. 연기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자기 생각을 자신만의 색깔로 표현하라고 말하죠. 좋은 연기를 보는 건 좋은 작품을 보는 것 이상의 기쁨을 주니까요.”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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