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 게이트를 빠져나가는 뻔한 4단계 레퍼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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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게이트를 빠져나가는 뻔한 4단계 레퍼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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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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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게이트에 연루됐던 국내외 인사들. 왼쪽부터 최순실, 최규선, 박동선, 리처드 닉슨, 김기춘.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2년 미국에서 발생한 워터게이트 사건은 정치 권력이 연루된 대형 비리 스캔들에 ‘게이트’라는 말이 접미사처럼 붙게 된 계기가 됐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도청이 이뤄진 워터게이트 호텔에서 비롯됐지만 이후 권력형 비리에 붙여진 ‘게이트’는 거대한 문이 열리면서 그 뒤에 감춰져 있던 진실이 한 눈에 드러나는 이미지를 내포한다.

문을 뜻하는 도어(door)와 게이트(gate)는 차이가 있다. 게이트는 거대한 문, 도어는 조그만 문을 뜻하고 게이트가 통제의 의미를 담고 있다면 도어는 출입의 의미를 담고 있다.

게이트가 터지면 권력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 있다. 초라한 문고리를 붙잡고 아등바등하는 것. 옛 속담은 이를 두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했다.

요즘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최순실 게이트’의 실체가 드러나는 과정에서 권력이 보여준 행태와 역대 권력형 게이트를 비교했다.

역공 : “거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시점에서 상대가 더 이상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굳건한 권력을 이용해 덤비는 세력에 더 강력한 카운터를 날리는 게 상책이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의혹은 최순실 게이트로 이르는 길이었다. 당연히 덮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 수석 의혹을 물고 늘어진 조선일보에 송희영 주필 호화 접대 건으로, 사건을 내사하던 이석수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에게 수사기밀 누설 명목으로 입막음에 나섰다.

최규선(오른쪽)씨가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방한한 마이클 잭슨, 김홍걸(왼쪽)씨와 함께 청와대 구 본관 뜰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규선 게이트

최규선 게이트는 김대중(DJ) 정권 당시 김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던 사업가 최규선씨가 DJ의 3남 홍걸씨와 함께 체육복표 사업 등 각종 이권 사업에 개입해 금품을 수수한 사건이다. 최씨의 운전기사인 천호영씨가 최씨의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로비 의혹을 폭로하며 시작됐다.

최씨 측은 역공에 나섰다. 최씨는 천씨가 폭로한 다음날 천씨를 공갈 혐의로 고소했고 사흘 뒤 천씨는 긴급체포 됐다. 체육복표 사업자 타이거풀스 역시 천씨를 명예훼손 및 공갈 혐의로 고소했다. 천씨의 입만 막으면 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의혹 제기 한 달여 만에 최씨가 자서전 집필을 위해 대필작가에게 맡겼던 녹음 테이프가 공개되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고 권력자들의 역공 또한 실패로 돌아갔다.

발뺌 : “난 모르는 일”

본격적으로 ‘최순실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한 것은 “최순실씨가 미르ㆍK스포츠 재단의 설립과 운영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부터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우병우 민정수석과 윤전추 행정관의 청와대 입성도 최순실씨와 인연이 작용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며 청와대 인사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얘기”라고 밝혔다.

의혹은 계속됐고 외면도 이어졌다. 청와대도, 문화체육관광부도,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도 의혹을 회피했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승마 지원 의혹을 받은 삼성, 두 재단과 관련된 전경련, 정유라 입학 및 학사 특혜 의혹을 받은 이화여대도 “모른다”로 일관했다.

지난 1978년 미국 하원 윤리위원회 공개 증언에서 서약을 하고 있는 박동선씨(왼쪽)와 1977년 박동선 사건을 보도한 미국의 주요 신문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코리아 게이트(일명 박동선 사건)

정치권에서 불리하면 모르쇠 카드를 꺼내 드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는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됐다.

코리아 게이트는 1976년 재미 한국인 사업가인 박동선씨가 미국 정치권에 친한(親韓)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미국 국회의원과 공직자 등 32명에게 85만 달러(현재 환율로 9억 7,000여만원)에 이르는 거액의 로비를 벌인 사건이다. 1975년 미국 하원의회 청문회에서 전직 중앙정보부 요원이 “미국 내 반(反)박정희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대규모 회유ㆍ매수 공작을 벌인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코리아 게이트가 시작됐다.

박씨는 미 의회 윤리위원회에서 로비 사실을 인정했지만 한국 정부와의 연관성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결국 이 사건은 미국과 한국의 외교 상황 등이 고려돼 흐지부지 막을 내렸다.

축소 : 게이트를 가리켜 도어라 하다

최순실 게이트가 ‘재단 설립을 통한 이권 개입’에서 ‘국정 농단’으로 전환된 것은 JTBC가 입수한 최순실씨의 태블릿 PC에서 대통령 연설문을 비롯해 인사ㆍ정책 자료 등 국가 기밀 문서들이 발견되면서였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깜짝 개헌 발표 하루 만에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일부에선 대통령이 스스로 사과해 ‘국정 농단’을 시인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여기에 “최순실 비선 모임이 30cm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를 사전 검토했다”는 증언이 나오며 ‘일부 연설문 수정’이 아니라 ‘국정 농단’에 더 힘이 실렸다.

박 대통령은 사과문에서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이 있으나” 식으로 ‘일부’, ‘일정 기간’ 등 한정적인 단어들을 자주 썼다. 결국 ‘거짓 해명’ 논란이 불거졌다. 이어 세계일보가 보도한 최순실 단독 인터뷰에서 최씨는 마치 박 대통령의 사과문과 짜맞춘 듯 연설문 수정에 대해 일부 시인하고 인사 개입, 재단을 통한 자금 유용 등의 의혹은 일체 부인했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1974년 8월 9일 백악관에서 영부인 팻 닉슨과 함께 대통령직 자진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워터게이트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을 하야하게 만든 사상 최대 정치 스캔들은 작은 사건에서 시작됐다. 1972년 6월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있던 워싱턴 워터게이트 호텔에 침입한 괴한들이 붙잡혔다. 범인들은 단순 절도 목적으로 침입했다고 주장했으나 수사 결과 도청 사실이 밝혀졌다.

‘단순 절도’라던 사건이 ‘정치 공작’으로 번지며 FBI가 수사에 나섰다. 재선을 노리던 닉슨과 측근들은 CIA에 증인 매수를 통한 FBI 수사 방해를 지시하며 사건의 축소ㆍ은폐를 시도했다.

닉슨의 선거 압승으로 도청 논란은 묻히는 듯했다. 국면을 전환시킨 건 닉슨 부보좌관의 내부 폭로였다. ‘대통령 집무실에 녹음 장치가 있으며 여기에 닉슨 대통령이 도청 사건의 은폐 공작에 관여한 내용이 녹음됐다’는 것. 여론이 악화하자 직접 기자회견에 나선 닉슨은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라며 사건 진화에 나서지만 오히려 국민들에게 ‘사기꾼’으로 각인되는 결과를 낳았다.

논란 끝에 닉슨은 녹음 테이프를 증거로 제출하지만 기록 대부분이 삭제된 상태였다. 이후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원본 테이프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CIA에 지시한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시도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트집 : 어디서 난 물건인고?

‘최순실 PC’가 공개되고 나서 가장 먼저 나온 최씨의 대응은 “내 것이 아니다”였다. 의혹의 출처를 문제 삼은 것이다. 최씨는 인터뷰에서 “나는 태블릿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쓸 줄도 모른다”며 “그런 것을 버렸다고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고 부인했다. 아울러 “어떻게 유출됐는지, 누가 제공했는지 모른다”며 “검찰에서 취득 경위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JTBC는 태블릿 PC에 저장돼 있던 최씨 사진들을 공개하며 ‘최씨의 PC가 맞다’고 반박했다.

김영삼 후보지원을 위한 부산지역 기관장 모임을 주도했던 김기춘 전 법무장관이 1992년 12월 21일 검찰에 출두하고 있다. 김 전장관은 '사과의 말씀'을 통해 물의를 빚은 점을 사과하면서도 이 모임이 관계기관 대책 회의가 아니며 사사로운 자리였다고 주장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초원복집 사건

1992년 12월 11일, 제 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산의 음식점인 초원복집에서 현지 정부 기관장들이 모여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사실이 도청 결과 드러난 사건이다.

당시 김영삼 후보를 내세운 민주자유당은 부산경남 지역 지지율을 끌어올릴 대책을 고심했다. 대선을 1주일 앞두고 김기춘 당시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부산시장, 부산지검장, 부산경찰청장, 안기부 부산지부장, 부산지구 기무부대장, 부산 교육청 교육감, 부산상공회의소 부회장 등 부산 지역의 행정, 사법, 군, 정보, 교육, 산업계 주요 인사들이 초원복집에 모였다.

녹취록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 노골적으로 얘기할 수 없고 접대를 좀 해달라. 검찰과 경찰청장도 양해할 거다. 우리가 남이가” 등의 발언을 했으며 참석 인사들 역시 동조했다. 이쯤 되면 공무원이 여론을 조작해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뚜렷하지만 결론적으로 불법 선거운동을 모의했던 이들은 승승장구한 반면 ‘불법 도청’을 한 통일국민당은 처참한 역풍을 맞았다.

의혹 자체보다 의혹을 제기한 증거의 출처를 문제 삼으며 이슈가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여기에는 당시 언론의 보도 행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조선일보는 당시 사설에서 ‘공공사회와 국민생활에 미칠 정보정치의 악영향을 고려할 때 도청행위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 고 주장했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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