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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기, 허영, 이상…지나간 세계에 바치는 젊은 애도

입력
2016.10.3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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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문학상 후보에 오른 ‘너무 한낮의 연애’의 김금희 작가. 이천희 제공
한국일보문학상 후보에 오른 ‘너무 한낮의 연애’의 김금희 작가. 이천희 제공

곧 마흔이 될 대학 요트부 동기생들이 해마다 송년 모임을 한다. 1차 오리고기, 2차 맥주, 그리고 3차는 노래방, 아니 단란주점이다. 누구는 이혼을 했고 누구는 제주에 내려가 인테리어 사업을 할 예정이고 또 누구는 여전히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채 동기들의 뜬소문으로만 회자된다. ‘엉겅퀸.’ 잘 엉겨서, 혹은 엉덩이가 커서 ‘엉겅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사람, 세실리아.

이 이름을 듣고 불현듯 불에 덴 듯 놀라며 자신들의 세실리아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다음의 세계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한 자리뿐인 출판사 정규직에 진입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인턴들이 있고, 그들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정규직이 있는 세계. 그리고 그 어느 것으로도 분류되지 않는 사람, 이를테면 ‘유령’ 취급을 당하는 사람이 있는 세계. 갓 스무 살이 된 디자이너들조차 적어도 스무 살 이상이 많은 그를 직급도 없이 오로지 이름으로만 불러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세계. 무리 중(衆)에 고를 균(均), ‘조중균 씨’가 속한 세계 말이다.

김금희의 두 번째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는 이런 사람, 이런 세계로 가득하다. 젊은 날의 객기와 허영, 텅 빈 이상 대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기는커녕 거울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는 듯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이 세속적 욕망에 투항해 버린 세계. 이 세계에서의 삶은 어떤 열정이나 희망도 용인하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미친 듯이 달려 겨우 도달한 이 세계는 우리에게 다만 저 ‘세실리아’와 ‘조중균 씨’를 잊으라고 요구할 뿐이다. 그들을 잊지 않으면 우리가 잊힌다. 우리는 저들처럼 잊히지 않기 위해, 적어도 ‘유령’ 취급은 당하지 않기 위해 오늘도 달린다. 그리고 그렇게 달리고, 달려서, 겨우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

김금희의 소설을 뒤덮고 있는 이 자괴감을 참담한 냉소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겠다. 오히려 그것은 모더니티에 대한 자학 개그에 가까운 것도 사실이다. 제대로 된 자학 개그가 그러하듯 김금희는 자기를, 자기의 과거를, 자신의 아름다웠던 시절을 숙주로 자기와 연루된 세계, 그 구체적인 일상의 디테일에서 웃음과 눈물, 열망과 한숨, 분노와 연민을 동시에 뽑아낸다. 그것은 따뜻하면서도 아프다. 눈물이 있는가 하면 어느 순간 웃음이 휘몰아치고 어수룩한가 하면 느닷없이 뒤통수를 갈기는 이 반짝이는 재능을 이런 비천한 용어로밖에 설명하지 못하는 무능을 용서하기 바란다. 다만 그것은 김금희의 이 ‘지나간 세계’에 대한 애도가 1979년생, 90년대 마지막 학번의 어떤 세대 감각과 무관하지 않음을 강조하고 싶은 조바심의 일환이기도 하다.

어떤 세대든 모두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이제 막 두 권의 소설집을 상자한 김금희는 이미 두 권의 소설집만으로도 자신들의 세대의 이야기에 관한 한 어느 누구도 그녀와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는 예단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그녀를 무서운 신예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고전적인 소설의 영토가 이렇게 새로운 피의 수혈로 그 거대한 몸집을 뒤척이는 장면을 지켜보는 심정, 당신들도 그녀의 소설을 읽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신수정 문학평론가

작가 약력

1979년 부산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성장했다. 인하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조중균의 세계’로 2015년 젊은작가상, ‘너무 한낮의 연애’로 2016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으며, 첫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로 제33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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