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정부가 내놓은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의 핵심은 한국선박회사(가칭) 설립이다.
최소 1조원을 투입해 국내 해운사의 컨테이너선 등을 우선적으로 사들이는 것인데, 수혜 대상은 주로 현대상선이 될 전망이다. 이번 대책이 사실상 현대상선을 초대형 국적선사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지원책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해양수산부 등이 해운업 대책으로 내놓은 한국선박회사에는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민간 등이 출자자로 참여한다. 이 중 산은과 수은이 80%, 캠코가 10%, 민간이 10%의 출자를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자본금은 초기에 1조원 규모로 조성되는데, 수요가 많으면 출자금액이 커질 수도 있다.
한국선박회사는 일단 국내 선사가 가진 선박을 시장가로 인수한 다음 선사에 다시 용선(傭船ㆍ선박을 빌려주는 것)을 해 준다. 한국선박회사는 용선료를 받아 수익을 챙기고, 나중에 해운업 업황이 나아지면 선박가격 상승을 통해 차익을 올릴 수 있다. 선사는 배를 팔아 목돈(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데, 유동성을 확보하면서도 선박 규모는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인수대상 선박은 출자자로 구성되는 투자위원회를 통해서 결정되는데, 해수부는 “우선은 영업 경쟁력이 취약한 원양선사의 컨테이너선을 인수 대상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한진해운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유일한 국적선사가 된 현대상선의 컨테이너선을 우선 사들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현대상선이 용선이 아닌 사선(선사가 소유한 선박) 형태로 보유한 24척의 컨테이너선을 사줘서 우회적으로 1조원의 자본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선박 신규 건조를 지원하는 프로그램 규모도 기존의 12억달러(약1조3,700억원)에서 24억달러(약2조7,400억원)로 두 배 늘어난다. 이 프로그램은 주로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만드는 데 지원되는데, 이번에 대상을 벌크선(곡물 석탄 등 포장하지 않은 화물을 적재하는 배)이나 탱커(액체화물을 싣는 배) 등으로도 확대했다. 특히 선박 건조 뿐 아니라 터미널 등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자산 구매도 지원할 방침인데, 이 역시 현대상선이 가장 큰 수혜 대상이 될 전망이다.
시중 유동자금이 선박건조 분야에 흘러들어 갈 수 있도록 민간선박펀드에 대한 규제도 완회된다. 주주의 자본 요건 등 과도한 재무건전성 요건이 완화되고, 재간접펀드(펀드에 투자하는 펀드)나 우선주(배당 우선권이 있는 주식)를 허용해 연기금이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해 줄 계획이다. 또한 중고선박을 매입해 재임대 해주는 사업인 캠코의 선박펀드 규모도 1조원에서 1조9,000억원으로 확대된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렇게 공급되는 금융지원 규모가 6조5,000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부산항 등 국내 항만에 환적(화물을 다른 운송수단에 옮겨 싣는 것) 물동량을 늘려 해운사 일감을 늘리는 노력도 병행하기로 했다. 환적 하역료를 깎아주는 등 인센티브를 집중 제공해, 상하이(上海) 등 경쟁항만에 비해 환적 물량을 더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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