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권 말 ‘반쪽 중립’ 경험
야권선 “진실 규명 우선” 부정적
새누리당이 30일 긴급 최고위원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정혼란 수습책으로 공식 건의하기로 한 거국중립내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거국중립내각은 현 내각이 총 사퇴한 뒤 여야가 공동 협의를 통해 총리와 장관을 비롯해 새 내각을 꾸리는 것이다. 국무위원 임명 제청 권한은 총리에게 있지만 총리를 여야가 주도해 결정한다는 점에서, 대통령 권력의 핵심인 인사권이 국회 손으로 넘어간다는 의미가 있다. 야당 추천 인사까지 내각에 참여, 여야 연립정부를 꾸리는 것으로 결국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탄핵’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헌정사에서 거국중립내각이 실현된 적은 없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사례는 노태우 정부 말인 1992년 10월 출범한 현승종 총리 내각이다. 당시 대선을 앞둔 시점에 노 대통령은 한준수 충남 연기군수의 관권선거 폭로, 여당인 민주자유당 김영삼 대선 후보와의 갈등 끝에 탈당을 선언한 뒤 거국적 중립내각 수립을 선포했다. 하지만 현 총리 임명에 노 전 대통령의 뜻이 반영된 데다, 내각이 2개월 간 대선 관리에만 집중해 ‘반쪽’ 중립내각이라는 평가가 많다.
반면, 현재 논의되는 거국중립내각은 내년 12월 대선까지 내치를 이끌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때문에 과연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도 엇갈린다.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는 “거국중립내각은 상황이 엄중한 만큼 대통령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당도 집권당의 프리미엄을 포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내각 구성을 반드시 여야의 손으로만 할지, 시민사회 등 정치권 밖 인사들을 포함할지는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여지를 남겼다. 여소야대 국면임을 감안하면 야당에 휘둘릴 수만은 없다는 뜻이다.
야권 역시 실현 가능성 자체를 높게 보고 있지는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이 중립내각 구성을 제안하더라도 당장 나설 뜻이 없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거국중립내각 구성은 듣고 싶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사과와 인사조치, 철저한 검찰 수사를 통한 진실 규명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이날 “거국내각은 선 검찰수사와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 후 논의하길 제안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은 걸 알면서도 시간을 끌며 흐지부지 할 가능성이 있다”며 “대선 후보들 역시 탄핵이나 하야보다 거국중립내각 구성이 낫다는 것일 뿐 이것이 꼭 이뤄질 것으로 생각지는 않는다”라고 전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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