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덩이’ 둘째 딸과 고생한 아내에게 바치는 선물이었다.
독일 분데스리가 아우크스부르크 구자철(29)이 올 시즌 마수걸이 골을 작렬했다. 그는 30일(한국시간) 아우크스부르크 WWK아레나에서 열린 분데스리가 최강 바이에른 뮌헨과 9라운드 홈경기에서 0-3으로 뒤진 후반 23분 만회골을 터뜨렸다. 올 시즌 9경기 만에 첫 득점이었다.
구자철은 득점 뒤 오른 엄지를 입에 갖다 대는 ‘젖병 세리머니’로 눈길을 끌었다.
알고 보니 현지시간 경기 당일 새벽 딸을 낳았다. 2013년 6월 결혼한 그는 이듬해 3월 첫째 아들을 얻었고 이날 둘째 딸이 태어났다. 현재 유럽에서 축구 연수 중이라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 본 정해성(58) 전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은 “오전 5시경 한국에 있는 아내가 딸을 낳았다고 한다. 그 소식을 기다리느라 구자철이 잠을 거의 못 자고 경기 직전 5분 정도 눈을 붙였다고 들었다. 그러고도 골을 넣었으니 대단하다”고 했다.
아우크스부르크는 전반 19분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28)에게 선제골을 내주고 2분 뒤엔 아리언 로번(32)에게 추가 골을 허용했다. 후반 3분 레반도프스키에게 또 한 골을 헌납했다. 가라앉은 팀 분위기를 구자철이 바꿨다. 후반 23분 역습 상황에서 다니엘 바이어그(32)의 패스를 정확히 오른발로 밀어 넣었다. 구자철은 원래 득점하면 동료들과 ‘요람 세리머니’를 펼칠 계획이었지만 0-3으로 크게 뒤진 상황이라 1분 1초가 아까워 ‘젖병 세리머니’로 대신했다.
구자철은 이날 오른쪽 윙으로 나섰다.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는 상대 왼쪽 수비수 다비드 알라바(24)를 막으라는 특명 때문이었다. 정 위원장은 “구자철이 알라바를 커버하느라 공격 진영으로 많이 올라가지는 못했다. 뮌헨이 알라바를 비롯해 티아고 알칸타라(25), 로번을 앞세워 흔들어대니 아우크스부르크가 내려설 수밖에 없었다”며 “후반 중반 구자철의 골이 나온 후 약 10분 정도 아우크스부르크가 거세게 몰아쳤는데 더 이상 득점이 나오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이날 최전방 공격수로 풀타임 뛴 지동원(25)도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공격포인트를 올리지 못했다.
경기 뒤 구자철은 ‘은사’ 정 위원장과 저녁 식사를 했다. 정 위원장은 2006년 제주 사령탑일 때 구자철을 처음 프로에 발탁한 사람이다. 정 위원장은 “구자철이 ‘져서 속상해도 선생님 앞에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다행이다’고 하더라. 나도 ‘이쁜 딸 축하 한다. 딸이 복덩인가 보다’며 격려해주고 간단히 맥주도 한 잔 했다”고 흐뭇해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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