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 시장 재편 가속도
삼성, 3D 낸드플래시 설비 등에
4분기 12조원으로 투자 확대
中 칭화유니, 국영기업 XMC 인수
스마트폰의 두뇌에 해당하는 응용 프로세서(AP)의 최강자인 미국 퀄컴이 네덜란드 반도체 업체 NXP를 품에 안았다. 또 하나의 ‘빅딜’이 성사되면서 전 세계 반도체 기업 간 합종연횡을 통한 시장 재편 속도가 한층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퀄컴은 27일(현지시간) NXP를 470억달러(약 53조8,150억원ㆍ채무 포함)에 인수합병(M&A)하는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전신이 필립스반도체인 NXP는 주로 자동차의 에어백과 쌍방향 통신 시스템, 교통카드, 스마트폰 결제 시스템 등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이번 인수는 반도체 업계 M&A 사상 최대 규모다. 이전까진 지난해 싱가포르 아바고가 미국 브로드컴을 370억달러(42조3,650억원)에 인수한 것이 최고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반도체 업계뿐 아니라 정보기술(IT) 업계 전체를 통틀어도 델이 EMC를 600억달러에 인수한 것에 이어 두 번째로 큰 M&A”라고 설명했다.
그 동안 퀄컴은 사업 다각화를 모색해왔다.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는데다 삼성전자, 애플, 화웨이 등이 모두 자체 AP를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렉 에벌리 퀄컴 사장은 지난 5월 “시장에는 너무 많은 경쟁 업체가 있기 때문에 한 가지 제품을 만드는 것만으론 살아남기 어렵다”고 토로한 바 있다. 퀄컴이 NXP를 인수한 것은 자율주행차 시대를 맞아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사물인터넷(IoT) 시장에서도 유리한 위치에 설 것으로 예상된다.
퀄컴은 두 회사가 통합되면 연 매출이 300억달러(34조3,500억원)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이 경우 메모리와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 전문업체(팹리스), 위탁 생산업체(파운드리) 등을 모두 포함하는 종합 반도체 업체 순위도 바뀔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지난해 순위에선 인텔(59조원)과 삼성전자(46조원), SK하이닉스(19조원)가 1~3위를 차지했다.
반도체 업계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M&A를 통한 몸집 불리기가 활발하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올 들어 10월27일까지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총 1,023억달러(117조1,335억원) 규모의 M&A가 이뤄진 것으로 집계했다. 2014년 연간 M&A 규모(169억달러)의 6배가 넘는다. 지난 7월에는 일본 소프트뱅크가 영국 반도체 설계 업체 암을 330억달러에 인수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주도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쪽에선 지난 7월 중국 칭화대가 출자한 칭화유니그룹이 중국 정부의 주도로 국영기업 XMC 지분 50% 이상을 인수, ‘창장 스토리지’를 설립하기로 했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최대 무역 적자국으로 매년 2,000억달러(229조원) 안팎의 반도체를 수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반도체 생산량의 50%를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며 2014년 1,200억위안(20조2,260억원)의 반도체 산업 투자 기금을 만들기도 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올해 시설 투자액이 27조원을 넘을 것이라고 전날 공시했다. 삼성전자는 4분기에만 12조3,000억원을 3차원(3D) 낸드플래시 메모리 생산 설비 등에 투자한다. SK하이닉스도 올해 총 6조원의 투자를 집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