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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출판사 첫 책]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2001)

입력
2016.10.28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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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인문학’은 2001년 출판계서도 화두였다. 그래서 인문 출판에 활기를 불어넣을 신선한 기획이 절실했다. 고심 끝에 내놓은 것이 일방통행 인문학을 넘어 학자들 간 ‘수평적 토론’의 장을 여는 ‘대담 기획’이었다. 학제 간 연구, 통섭, 융합 등의 시도가 아직 여물지 않았던 당시, 학문 간 경계를 가로지르는 기획은 학계에서 하나의 도전이었다. 더불어 진지하고 치열한 토론의 현장을 생중계해 인문학 토론장을 관전하는 재미를 제대로 전할 수 있다면 인문학 대중화에도 분명 활력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막 시작하는 출판사에서 대담 기획이라니. 그것도 좀체 마주앉는 일 없는 분야의 학자들만을 콕 짚어서.

대담한 기획자들이 대담 기획에 착수했고, 3종의 기획을 함께했다. 동양과 서양, 한국과 일본, 인문학과 자연과학. 이질적이어서 맞붙여보고 싶고, 넘나듦이 없어 대화가 절실한 상대들을 불러냈다. 그 중 가장 먼저 링에 오른 선수는 서양철학자 김용석 교수와 동양철학자 이승환 교수다. ‘처음’이라는 건 언제나 모험적이어서 링 위에 오르기까지 오랜 설득과 기다림이 필요했다. 대담자만 섭외되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았던 기획. 진짜 어려움은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으니, 아마 대담집의 전 과정을 미리 알았더라면 어떤 편집자도 선뜻 나서지 못하리라(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두 명의 대담자 외에 대담 사회를 맡을 젊고 신선한 연구자와 사진과 동영상을 책임질 연출자, 녹취팀, 편집팀까지 일곱 명의 스태프가 꾸려졌다.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꼬박 진행된 긴장감이 감돌던 첫 대담 이후 신선한 자극들이 오가며 혼자서는 이루어낼 수 없는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갔다. 반팔을 입고 시작한 대담은 외투를 꺼내 입으며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기획에 착수한 6월 12일부터 마지막 대담이 있었던 10월 7일까지 127일간 다섯 차례 총 30여 시간의 대담이 있었고 네 차례에 걸친 개별 인터뷰가 8시간 동안 진행됐다. 대담 현장 사진 800여 컷, 동영상 촬영 10시간, 두 시간짜리 녹음 테이프 15개, 다섯 달간 주고받은 이메일 210여 통, 녹취 원고 2,010매. 이 숫자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탄생했다. 출판사가 기획ㆍ발간한 최초의 본격 철학 대담집으로 우리 토론 문화에 큰 자극제가 됐다고 자부한다.

함께 기획했다던 나머지 두 종의 운명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약 27개월 간 진행된 임지현ㆍ사카이 나오키의 ‘오만과 편견’, 2001년에서 2005년까지 약 4년 간 이어진 도정일ㆍ최재천의 ‘대담’을 생각하면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의 대담 진행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첫 책이 단 127일 간의 대담으로 출간될 수 있었기에, 뒤이어 27개월간의 대담, 4년간의 대담도 가능했다. 첫 책의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황서현 휴머니스트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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