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는 서로를 외면한다. 마을과 동떨어진 계곡에서 이웃으로 사는데도 서로를 투명인간 취급한다. 간단한 인사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우량 양 선발대회에 나가서는 두 사람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간 발의 차이로 우승을 놓친 남자 구미(시구르두르 시구로욘슨)는 분을 참지 못 하는데, 알고 보니 우승한 양의 소유자인 이웃은 형 키디(테오도르 율리우손)다. 어떤 이유로 형제가 담을 쌓고 서로 이를 갈며 살게 됐는지 영화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는다. 형제의 아버지가 전 재산을 동생에게 물려주면서 두 사람 사이 갈등의 씨앗이 뿌려졌다고 암시할 뿐이다.
40년 동안 등을 돌린 형제는 어쩔 수 없이 궂은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키디의 양이 치명적인 돌림병에 걸린 사실을 구미가 눈치채면서부터다. 구미는 마을 전체로 병이 번지는 것을 우려해 친구에게 귀띔을 해주고, 방역당국이 동원된 뒤 구미와 키디가 사는 곳 주변 일대 모든 양들에 대한 도살 처분 조치가 내려진다. 양은 주수입원이자 주요 먹을 거리이며 긴 겨울을 보낼 동반자다. 낭떠러지 앞으로 밀린 신세가 된 키디는 동생 구미를 더욱 증오하고 형제의 화해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모양새가 된다.
아이슬란드 영화 ‘램스’는 갈등하는 형제를 통해 전통과 가족애의 의미를 되묻는다. 영화 속 양은 전통을 상징하며 가족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구미는 주변 몰래 자신의 양 몇 마리를 집 지하로 빼돌려 키우는데 그의 범법 행위는 역설적이게도 조각 난 형제애를 접합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우량 양 선발대회 심사위원인 수의사가 병든 양을 못 알아본다는 설정 등 블랙유머를 곁들인 이 영화는 현대 아이슬란드의 사회상을 대변한다. 첨단금융기법을 도입해 한 때 선진국의 면모를 과시하던 북구의 조그만 섬나라 아이슬란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며 국가적 파탄을 맞는다. ‘램스’에서 양들이 걸린 전염병은 영국에서 들어온 외래병으로 외부 문화를 상징한다. 외부 문화에 의해 전통적 가치(양)가 파괴되면서 공동체는 위기를 맞으나 또 양을 통해 서로의 갈등을 해소하고 공동체를 복원할 수 있다고 영화는 웅변한다.
눈 덮인 아이슬란드의 풍광이 이국적인 볼거리를 제시한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받았다. 감독 그리무르 하코나르손. 11월3일 개봉, 15세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