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27일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에 따른 인적 쇄신 등 후속조치와 관련해 “대통령이 숙고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씨의 연설문 수정 등이 자신의 뜻에 따른 것임을 박 대통령이 시인하고 사과한 지 사흘 동안 최씨의 국정개입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실망과 분노에 휩싸인 민심은 들끓고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대통령의 결심을) 지켜보자”고만 되뇌고 있다. 그러나 새롭게 드러나는 의혹과 이에 대한 청와대의 허술한 대응을 보면 과연 청와대와 박 대통령이 의혹 해소와 쇄신 의지가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미르ㆍK스포츠재단의 설립과 대기업의 기금 출연 과정에 개입한 의혹이 짙은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 수석에 대해서는 K스포츠재단이 SK그룹으로부터 80억원을 유령회사인 비덱스포츠로 투자받으려 시도하는 과정에 직접 간여했다는 증언이 추가로 제기됐다. 또 정호성 청와대 부속실 비서관은 최씨의 태블릿 PC에서 자신의 이메일 주소가 확인됐는데도 이렇다 할 해명을 못하고 있다. 정 비서관이 문건을 최씨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할 만한 정황이다. 또 최씨의 태블릿 PC 개통자가 김한수 청와대 선임행정관으로 의심되고, 이영선ㆍ윤전추 청와대 행정관 역시 최씨 소개로 청와대에 입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특검이 예고된 상황에서도 최씨와 직ㆍ간접적으로 관련된 다수의 인사들이 여전히 청와대 업무를 보고 있는 것은 어찌 봐도 정상적 상황이 아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역시 마찬가지다. 우 수석은 2014년 민정비서관으로 발탁될 당시 최씨와의 인연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제기됐다. 최씨와의 관련 의혹이 아니더라도 핵심 업무인 대통령 측근 관리에 실패하고, 개인 의혹을 검찰이 수사하는 마당이면 벌써 업무에서 손을 떼야 했다. 최씨와 관련된 청와대 인사들의 증거인멸, 독일에 있는 최씨와의 은밀한 교신과 정보유출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는 이런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이들의 직무를 정지시켜 마땅한데도 결정을 미루고만 있다.
청와대 눈치를 살피는지 뒷북 수사에 매달린 검찰 행태도 미덥지 못하다. 이날 최씨의 ‘국정농단’ 의혹과 관련해 특별수사본부를 출범시키면서 미르ㆍK스포츠 이사장 사무실과 문화체육관광부 고위관계자 사무실 등 7곳을 추가로 압수 수색 했다. 본부장을 맡은 이영렬 중앙지검장은 “성역 없는 실체적 진실규명”을 다짐했다. 그러나 사건의 성격상 가장 먼저 압수수색을 해야 할 곳은 청와대 비서실이다. 청와대가 앞장서서 ‘성역 없는 수사’에 호응, 검찰이 청와대 비서실부터 뒤져야 했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볼 수 없던 국정마비 사태에 시국선언이 봇물 터진 듯하고, 하야와 탄핵 소리도 잇따르고 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앞뒤를 재고, 뜸을 들일 상황이 아니다. 연설문의 사전 유출 및 수정과 관련해 최씨의 도움을 받았다고 인정한 박 대통령도 수사를 받을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민심을 제대로 수습하기 어렵다. 국정혼란의 장기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이 진상규명과 인적 쇄신에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즉각 실행에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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