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카 사진 저장된 태블릿PC “내 거 아니다”
검찰 수사 언급하며 가이드라인 제시 의혹
“안종범ㆍ김종 얼굴도 모른다” 잡아떼기까지

국정 농단 파문의 중심에 있는 비선실세 최순실(60ㆍ최서원으로 개명)씨가 언론을 통해 처음 입을 열었지만, 실체가 드러난 의혹 대부분을 부인해 “수사에 대비한 자기방어용 변명”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과하고, “귀국할 수 없다”고 밝힌 데 대해서는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27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씨는 조율이라도 한 듯 박 대통령이 25일 대국민사과에서 인정한 정도까지만 시인했다. 대통령 연설문을 받아본 것까지는 시인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뜯어보면 사실이 어긋하는 점들이 많다. 최씨는 “(대통령 관련 자료를) 당선 직후 초기에 이메일로 받아본 것 같다”면서 “(2012년) 대선 당시인지 그 전인가 (개입) 했다. (대통령) 마음을 잘 아니까 심경 고백에 대해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씨) 의견을 들은 바 있다”고 했고, 실제로 JTBC를 통해 공개된 유출 문건은 집권 2년차인 2014년 3월 독일 드레스덴 연설문까지 포함돼 있다. 최씨는 또 “민간인이어서 그것이 국가 기밀이나 국가 기록인지 전혀 몰랐다”고 강조했는데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이나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를 피하기 위한 의도적 발언으로 의심된다.

더욱이 최씨는 기밀 문서를 받아본 태블릿PC에 대해 “나는 태블릿을 가지고 있지 않고, 쓸지도 모른다. 제 것이 아니다”라고 잡아뗐다. 오히려 “남의 컴퓨터를 보고 (JTBC가) 보도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며 “어떻게 유출됐는지 누가 제공한지 모르기 때문에 검찰에 확인해 봐야 한다”고 검찰 수사를 주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해당 태블릿PC에는 최씨의 사진이 저장돼 있고, 주고받은 메신저도 남아 있다. 컴퓨터 아이디는 최씨 딸의 정유라(20)씨의 개명 전 이름인 ‘유연’으로 저장돼 있다. 여러 정황상 최씨와 무관하다고 하기 어려운 것이다. 최씨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를 무력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태블릿PC를 분석 중인 검찰도 “일단 최씨가 갖고 다니던 것으로 보인다”며 “(최씨가 직접 사용한) 나름대로의 근거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최씨 이외의 다른 사람이 사용했던 흔적 여부에 대해서는 “(분석이 진행 중이라) 아직 알 수 없다”고 답했다.

최씨는 국정개입과 미르ㆍK스포츠재단 사유화 의혹에 연루된 인사들에 대해서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먼저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나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에 대해 “안 수석의 얼굴은 알지도 못한다. 그들도 나를 알지 못할 것이다. 김 차관의 경우 저와 연결하려는 ‘그림’인 것 같다. 한양대와 관련해 아는 사람이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안 수석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 정책메시지본부장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고용복지분과위원 등을 맡아 박 대통령을 지근 거리에서 보좌했고 19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얼굴을 두루 알린 인물이다.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최씨가 안 수석 얼굴을 모른다는 것은 지나던 소가 웃을 일”이라고 말했다. 김 차관이 한양대 출신이라는 것도 최씨가 먼저 언급했다. 또 광고감독 차은택(47)씨에 대해서도 최씨는 “차씨와 가깝지 않고 옛날 한번 인연이 있었을 뿐”이라고 했지만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 이성한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최씨가 주관하는 비선 모임에 차씨가 항상 있었다”고 증언했다.

더욱이 전국적으로 진상규명 요구가 빗발치는데도 최씨는 “약을 먹고 죽을 수 있다”며 당분간 귀국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신경쇠약에 걸려 있고, 심장이 굉장히 안 좋아 병원 진료를 받고 있어 돌아갈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박 대통령의 사과에 대해 “너무 가슴 아프다”며 “나라만 위하는 분인데 그런 분에게 심적으로 물의를 끼쳐드려 사과드리고 싶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국민 여러분의 가슴을 아프게 해 죄송하다”고 덧붙이기는 했지만 국정 농단에 대해 국민에 사과하기에 앞서 대통령을 우선시한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최씨가 당분간 도피 의사를 밝힘에 따라 진상규명 속도는 더뎌지고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제 공조를 요청해 강제송환하려면 의혹 수준이 아닌 최씨의 범죄혐의를 구체화해 국가간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상당 시일이 걸릴 수 있다. 사건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박 대통령이 직접 귀국을 종용해야 할 상황이지만 이날 청와대는 정연국 대변인 입장을 통해 최씨의 귀국을 ‘촉구’하는 데에 그쳤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