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두리(36)가 위기의 국가대표 축구팀에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차두리를 울리 슈틸리케(62ㆍ독일)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 전력분석관으로 선임했다고 27일 발표했다. 작년 말 현역 은퇴(대표팀 은퇴는 작년 초) 뒤 독일에서 지도자 연수 중이던 차두리는 26일 귀국해 27일 서울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동석한 이용수(57)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대표팀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는 상황에서 선수들에게 존경 받는 차두리가 형님 역할 뿐 아니라 안팎으로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을 거다. 슈틸리케 감독과 독일어로 직접 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도 지녔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차두리의 직책은 전력분석관이지만 실제로는 막내 코치나 다름 없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당시 딕 아드보카트(69) 대표팀 감독이 후배들에게 큰 신임을 받던 홍명보(47)를 코치로 뽑은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당시에는 ‘특혜논란’이 일었다. 국가대표 코치를 하려면 A급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데 홍 감독은 B급만 갖고 있었다. 차두리도 B급 소유자다. 이에 축구협회는 차두리를 전력분석관으로 임명해 자격증 시비를 사전에 차단했다. 차두리가 내년 상반기쯤 A급을 따면 바로 코치로 승격시킬 계획이다. 슈틸리케 감독도 환영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슈틸리케 감독은 자격증만 아니면 예전부터 차두리를 (코치로) 쓰고 싶어 했다. 이번에도 흔쾌히 동의했다”고 밝혔다.
차두리는 현 대표팀 선수들과 막역하다. 대표팀 주장 기성용(27ㆍ스완지시티)은 차두리를 멘토로 삼고 있고 손흥민(24ㆍ토트넘)은 ‘삼촌’이라 부르며 따른다. 그가 어떻게 선수들과 소통의 물꼬를 틀 지 관심이다. 차두리는 “선수들이 자신감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며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이다. 아시아에서는 누구와 만나도 겁먹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지금 많이 위축돼 있다. 마음의 짐을 내가 덜어주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지난 11일 이란전 패배 직후 거센 비판을 받았던 슈틸리케 감독의 ‘소리아’ 발언과 관련해 차두리는 “모든 책임은 감독이 지는 게 맞지만 선수들도 기분 나빠하기에 앞서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독일 속담으로 ‘자기 코를 잡아봐라(자신부터 돌아보라는 의미)’고 한다”고 뼈 있는 말을 던졌다.
축구협회의 요청에 응한 건 차두리 개인으로 보면 적지 않은 부담이다. 그는 아버지인 차범근(63) 전 대표팀 감독이 1998년 프랑스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승승장구하며 ‘국민스타’ 대접을 받다가 월드컵 실패로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자신을 환영하는 여론이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차두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국가대표는 너무 소중한 곳이다. 협회의 제안이 왔을 때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란전을 보면서 처음으로 선수 은퇴한 걸 후회했다. 내가 좀 더 후배들을 이끌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내가 국가대표를 은퇴할 때 너무 큰 선물(큰 박수를 받으며 은퇴경기를 할 수 있도록 배려)을 해 주신 분이다. 지금 모든 비판을 혼자 감내하고 있는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차두리는 다음달 7일 대표팀 소집부터 활동을 시작해 11일 캐나다(평가전), 15일 우즈베키스탄(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전을 준비한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