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회사 애널리스트였던 선배는 몇 번이나 약속에 늦지 말라고 나에게 당부를 했다. 꼭 소개시켜주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고, 사회생활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고 으스댔다. 나는 서른한 살이었다. 중국식당 기다란 룸에는 스무 명 가량의 30대 젊은이들이 있었다. 대부분 대기업 직원들이었고 변호사며 의사, 공무원들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몹시 친밀해 보였다. 그럴싸한 회칙까지 갖춘 모임이었다. “여기 들어오려면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한데 넌 걱정 마. 내가 특별 멤버로 추천한 거니까.”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아직 첫 책 출간도 하지 않은 변변찮은 작가일 뿐이었다. 평일 저녁 시간이었음에도 마스카라를 칠한 속눈썹 한 올 흐트러지지 않은 여자들과, 술을 마시면서도 넥타이를 헐겁게 풀지 않는 남자들 사이에 끼어 앉는 일은 무척 어색한 일이었지만 다행히도 그들은 하나같이 친절했다.
애초 선배가 나를 모임에 데려갔던 이유가 그랬듯 소설가라는 내 직업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들과 반 년 정도 어울려 다녔다. 그동안 신입멤버는 더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은 ‘소수’라서 그들의 단단한 모임을 더 자랑스러워했다. 젊은 그들의 욕망은 날것 그대로 생생했다. 나는 종종 농담을 건넸다. “뭐야, 너희들 사회지도층 꿈나무들인 거야?” 이제 그들을 더 만나지는 않아서 그들의 꿈처럼 한 무더기의 사회지도층으로 앉아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아직 대한민국은 교주의 딸이니 호스트바 종업원이니 팔선녀니 하는 이들이 꽉 붙들고 있으니 말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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