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실리외교’를 펼치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2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아베 총리는 필리핀과 경제 및 안보분야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전했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은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의 구속력을 확인한뒤, ‘법의 지배’에 따른 평화적 해결을 위해 일본과 연계 대응하겠다고 화답했다. 이는 지난 20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남중국해 문제 언급을 보류한 것과 결이 크게 다르다.
이날 오후 6시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시작된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올해는 양국간 국교정상화 60주년이다. 관계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밝히자 두테르테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대응과 관련 “일본과 필리핀은 같은 상황에 있다고 생각한다. 법의 지배를 토대로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서 “항상 일본 편에 설 것이다”고 말했다고 NHK가 전했다. 두 정상은 공동기자회견에서 필리핀의 인프라 정비 및 해상무역 등에 대한 일본의 경제협력 방안을 발표했다. 특히 일본 측이 두테르테 대통령의 고향 민다나오섬의 농업개발에 50억엔(약 550억원)의 차관을 제공하고 필리핀 해상경비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대형순시선 2척을 공여할 의사도 재확인했다.
전날부터 사흘간의 첫 일본 방문 일정에 들어간 두테르테는 이날 ‘일본ㆍ필리핀 우호의원 연맹’과의 만남에선 “중국이 커지면 미국과 충돌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필리핀과 일본)는 중국에 대해 같은 입장이기 때문에 손을 잡아야 한다”고 양국간 우호를 강조했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전했다.
두테르테는 또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주최로 열린 필리핀 경제포럼 강연에서 “필리핀의 고용을 증대해야 한다. 일본과 매력적인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가고 싶다”며 일본기업의 투자를 제안했다. 그러면서 “필리핀은 근린국과 싸우지 않으며 중국의 친구다” “독립적인 외교정책을 선언한다” “외국군대는 2년 안에 필리핀에서 나가면 좋겠다” 등 미국을 향해 날 선 발언을 이어갔다.
두테르테는 25일 밤 1,200여명의 환영 인파가 모여든 도쿄 내 ‘필리핀 교민의 밤’행사에서도 “미국은 약자를 괴롭히는 불량배이다”라며 미국을 겨냥했다. 그는 “우리(필리핀)의 존엄성을 망가뜨리지 말라. 한 나라의 자주권을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 이런 대우는 견딜 수 없다”라며 마약과의 전쟁을 인권탄압이라 지적한 버락 오바마 정부를 비난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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