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 나는 배 매입해 유동성 공급
선박펀드에 벌크선 등 대상 확대
조선업 빅2 재편 등 M&A 없어
자칫 반쪽 대책에 그칠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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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해운사가 보유 중인 선박 중 손실이 나는 선박을 사들여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선박은행’의 규모를 대폭 늘리기로 했다. 업황 부진으로 유동성 위기에 몰린 해운사를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또 조선 3사(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금융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대대적인 구조조정이나 인수ㆍ합병(M&A)을 통한 사업재편 등은 추진하지 않기로 해 자칫 알맹이가 빠진 반쪽 대책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6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31일 내놓을 조선ㆍ해운업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에 현재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운영하는 선박은행의 규모를 대폭 늘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해운사를 측면 지원하는 방안을 담을 예정이다. 캠코가 운영하는 선박은행은 지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유동성 위기를 겪는 해운사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만들어졌다. 정부의 구조조정 기금으로 운영되던 선박은행은 2014년 말 운영시한이 끝나면서 2015년부턴 캠코의 자체 자금으로 꾸려지고 있다. 현재 선박은행 규모는 1,000억~1,500억원 수준이다.
선박은행은 해운사가 보유 중인 선박 중 굴릴수록 손실이 커지는 선박을 사들여 이를 은행 이자보다 싼 값에 다시 해운사에 빌려주는 역할을 한다. 사실상 장기 저리 대출이다. 해운사는 다달이 선박 임대료(용선료)를 내고 선박을 이용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선박 소유권을 다시 넘겨 받게 된다. 업황 부진으로 사실상 금융권 대출이 막힌 해운사로서는 선박은행에 선박을 넘기면 유동성에 숨통도 트이면서 선박을 다시 사들일 수 있는 권리까지 보유하게 돼 업황이 회복되면 곧바로 늘어난 선박 수요에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정책자금을 출자하는 방식으로 선박은행 규모를 대폭 늘릴 예정이다. 지금은 캠코가 한 해 사들이는 선박이 7척에 불과해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 없이 부족한 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해운사의 가장 큰 문제가 금융권에서 쉽게 사업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는 점”이라며 “선박은행 규모가 커지면 중소 해운사의 유동성 문제가 어느 정도 잡힐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선박 신조(新造) 지원 프로그램(선박펀드)을 이용할 수 있는 선박의 종류를 늘리는 방안도 대책에 담을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은 적용 대상이 초대형 고연비 선박(주로 초대형 컨테이너선)에 한정돼 있지만, 이를 벌크선, 중소형 컨테이너선 등으로까지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 경쟁력 강화 대책은 조선 3사 각각의 강점 분야에 대한 차등적 금융지원이 핵심이 될 전망이다. 또 앞서 발표한 공공부문 선박을 조기 발주하고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여파로 이들 업종이 몰려 있는 지역의 실업률이 치솟고 있는 점을 고려해 이를 완화할 수 있는 금융지원책도 담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선업계를 ‘빅2’로 재편하는 등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 대책은 모두 제외됐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일일이 회사의 경영을 간섭하는 방식은 경쟁력 강화가 아니라 오히려 경쟁력을 훼손시킬 수 있다”며 “정부 차원의 조선ㆍ해운 사업재편 등은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세종=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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