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서 투표율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다 보니 투표율과 관련한 재미있는 분석이 많다. 얼마 전에는 술 소비량이 많은 지자체의 투표율이 높은 반면 흡연율ㆍ자살률이 높은 지자체의 투표율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투표율이 승패의 결정적 변수가 된 게 지난 6월의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다. 젊은층에서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비중이 월등한데도 정작 이들의 투표율은 장년층이 주도한 찬성파 투표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브렉시트에 비판적인 여론이 많았음에도 선거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이유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대선 불복을 시사해 미국이 시끌벅적하다. 후보 경선 때도 투표조작을 주장했던 그는 이번에는 언론이 편파적으로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다며 미디어에 의한 선거조작을 들고 나왔다. 그러면서 2000년 연방대법원까지 개입한 앨 고어 당시 민주당 후보의 ‘사법대선’을 구실로 선거불복이 자신이 처음이 아님을 강변했다. 물론 고어의 경우 개표과정에서의 오류가 원인이었다는 점에서 판세가 불리해지자 느닷없이 선거부정을 거론하는 트럼프와는 상황 자체가 다르다.
▦ 트럼프의 대선불복, 선거조작 발언의 의도는 뻔하다. 자신의 지지층 투표율은 높이고, 상대인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지지자에게는 정치염증을 불러일으켜 투표의지를 꺾어보자는 것이다. 브렉시트처럼 투표율에 의한 막판 역전을 노린 수다. 쉬이 통하지 않을 것 같지만 미국처럼 투표절차가 까다롭고, 인종에 따른 투표심리가 제각각인 환경에서는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클린턴의 지지층인 히스패닉, 흑인 등 소수인종이 트럼프 지지층인 백인보다 전통적으로 투표율이 낮다는 게 문제다.
▦ 미국 대선일은 우리와 달리 공휴일이 아니다. 그래서 경제적 소외계층인 소수인종이 생업을 포기하면서까지 투표하기가 쉽지 않다. 또 투표하려면 사전에 유권자등록을 해야 하는데, 이들에게는 한 표를 행사하는 것보다 자신의 불안정한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중투표 등을 막기 위해 신분 증명을 엄격히 하는 주(州)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제는 유권자가 아예 투표장에 가지 못해 민의가 왜곡되는 투표방식을 재고해 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 투표행위마저 양극화하는 것을 막지 못하면 그게 진짜 민주주의의 위기다.
황유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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