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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누가 아베를 탓하랴

입력
2016.10.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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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 대한 한국인의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죄편지를 보내자는 의견에 대해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잘라 말한 그를 보면서 역사 인식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정나미가 떨어졌다고 느꼈을 이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50%가 넘는 내각지지율이 말해 주듯 아베의 정치기반은 탄탄하다. 정권에 대한 인기가 모든 걸 말해주진 않지만, 아베는 이를 기반으로 지속해서 일본 외교의 지평을 확장하려 시도해왔다. 일본 유권자들도 뭔가 눈에 띄는 성과를 내놓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아베 외교의 활력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우리로선 두고두고 땅을 칠 일이지만 지난해 위안부 합의는 아마 아베 외교의 중대한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제대로 사죄도 하지 않은 채 단돈 10억엔으로 한국 정부의 입을 ‘불가역적으로’ 틀어막은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이제 한일 정부 간의 현안이 아니라 한국만의 문제가 된 것이다. 위안부 문제로 한국 국내는 야단법석이지만 일본에서는 골칫거리를 제거했다는 안도감이 넘친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군소리 말라”고 다그치는 적반하장의 외교가 앞으로도 공공연히 펼쳐질 것이다.

아베 외교는 전적으로 대미종속적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요즘 아베는 미국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대러시아 외교에서 어떻게든 중대한 족적을 남기려 골몰하는 것 같다. 러시아가 어떤가. 2013년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 주도하에 일본도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지 않은가. 아베는 이런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을 12월 고향 야마구치(山口)현의 료칸(旅館)으로 불러 전후 일본 외교의 최대 과제 중 하나인 북방 4개 섬 영토문제에 관해 “기존에 없던 발상”으로 담판을 벌일 작정이다. 당돌하면서도 대담한 ‘적과의 내통’이다.

아베가 지난 70년 동안 풀지 못한 난제를 단박에 해결할 묘안을 갖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게다가 러시아는 물론이고 4개 섬 일괄반환을 당연시해온 일본 국민이 아베 ‘발상’을 순순히 받아들일지, 미국이 묵인해줄지 등 곳곳이 지뢰밭이다. 하지만 중국 견제를 위해서라도 일본의 협력이 절실한 미국이 정권교체기에 있다는 점, 코너에 몰린 러시아도 어떻게든 일본을 통해 숨통을 트려 한다는 점, 무엇보다 아베 정권이 국내적으로 안정적이라는 점 등은 아베에겐 승부수를 던질 호조건이다. 아베는 이렇게 러일관계를 재조정한 후 이를 토대로 내년 초 중의원을 해체해 정권을 탄탄대로에 올려놓을 생각인 것 같다.

아베가 “기존에 없던 발상” 운운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동안 박근혜 정부는 대북 강경노선을 고수하면서 러시아는 물론이고 중국의 불신을 자초했다. 특히 한국은 북한 문제를 놓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외교 줄타기에 몰두하는 바람에 외교적 유연성을 소진해 버렸다. 외곬은 외교가 아니다. 이렇게 박 대통령이 강조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무너졌고, 유라시아 이니시어티브는 개념 자체가 낯설 지경이다. “이게 나라냐”라는 개탄이 나오는 것은 최순실 패닉에 허우적거리는 국내정치만이 아닌 것이다.

아베가 외교를 잘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아베의 활력이 일본의 장래에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이다. 하지만 아베 외교는 국익이라는 명분하에 매우 일관되게 움직이면서 실제로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 지난 8월 올림픽 폐막식에서 슈퍼마리오로 분장한 아베가 도쿄 한복판에서 지구의 반대편으로 터널을 뚫고 나타나는 깜짝쇼를 연기했듯이 말이다. 외치와 내치는 한 몸이다. 아베는 끊임없이 자신의 외교방침을 국민에게 설명한다. ‘수첩’과 정체불명의 연설문에만 의존해 일방적으로 통보한 후 외곬 외교로 치닫는 박근혜 정부와는 결이 다르다. 박근혜 외교의 무능과 난맥상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에겐 아베 외교를 탓할 겨를이 없다.

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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