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박정환 9단
흑 이세돌 9단
<장면 12> 정상적으로 둬서는 흑이 이기기 힘든 형세다. 지금 9 정도로 둬서 백돌을 잡는 건 너무 물건이 작다. 어떻게든 바둑을 복잡하게 만들어서 어디선가 큰 이득을 취해야 역전을 기대할 수 있다.
이세돌이 먼저 중앙을 1, 3으로 나가 끊었다. 백은 4, 6으로 단수 칠 수 밖에 없는데 이로 인해 A와 22, 두 곳에 단점이 생겨서 백도 약간 기분이 나빠졌다. 그래서 박정환이 8~12를 선수한 후 14로 젖혀서 우선 22의 단점부터 보강했다.
중앙 흑돌(▲)까지 백의 수중에 들어가면 흑이 도저히 역전을 기대할 수 없다. 이세돌이 15로 끊어서 일단 바둑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특유의 흔들기 수법이다. 하지만 박정환이 16, 18로 응수해서 별 문제가 없어 보였는데 19 때 20으로 맞젖힌 게 거의 패착이나 다름없는 실수다. 지금은 얌전히 B로 잇는 게 정수였다. 그랬으면 아무 탈이 없었다.
이세돌이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재빨리 21로 이어서 22를 강요한 다음 23으로 껴붙인 게 통렬한 급소 일격이다. 조금 전과 달리 지금은 <참고도> 1로 두는 수가 성립하지 않는다. 2로 젖히면 3, 5로 연결해야 하는데 아래쪽 백 석 점이 저절로 잡혔으므로 흑이 선수를 뽑아 중앙을 6으로 밀고 나오면 14까지 잡혔던 흑돌이 거꾸로 백돌을 잡고 살아간다. 이래서는 단박에 역전이다.
박정환이 좀처럼 착수를 하지 못하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세돌의 흔들기가 이번에도 멋지게 성공을 거둔 셈이다.
박영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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