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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취업 제공” 미끼에 걸려... 필리핀서 전과자된 취준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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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취업 제공” 미끼에 걸려... 필리핀서 전과자된 취준생들

입력
2016.10.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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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원대 도박사이트 일당 적발

120명 여권 등 뺏고 범행 강요

인천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등 혐의로 김모씨 등 16명을 구속하고 12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6일 밝혔다. 경찰이 이들로부터 현금 13억원과 휴대전화, 노트북 등을 압수했다. 인천경찰청 제공
인천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등 혐의로 김모씨 등 16명을 구속하고 12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6일 밝혔다. 경찰이 이들로부터 현금 13억원과 휴대전화, 노트북 등을 압수했다. 인천경찰청 제공

‘해외에서 일할 분 구합니다. 숙식 제공, 단기간 고소득 보장.’

취업준비생 오모(23)씨는 지난해 1월 인터넷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일자리를 찾다가 눈에 띄는 구인공고를 발견했다. 곧바로 이력서를 낸 오씨는 며칠 뒤 경기 성남시의 한 사무실에서 면접을 본 뒤 고민에 빠졌다. 사무직인줄 알고 갔지만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리핀 마닐라에서 일하고 월급 200만원에 3개월마다 20만~30만원씩 올려준다는 조건은 외면하기 어려웠다. 일하는 만큼 인센티브를 주고 학원 수강료 지원 등 혜택도 매력적이었다.

결국 오씨는 분당의 한 교육장에서 일주일간 국내외 축구와 야구 등 경기 결과를 도박 사이트에 등록하는 방법 등을 배우고 필리핀으로 넘어갔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감옥과 다르지 않았다. 여권은 빼앗겼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본명 사용은 금지됐다. 6개월까지 휴가도 없었고 주민등록등본, 통장은 이미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오씨는 지난해 10월까지 9개월간 일하면서 3,000만원 가까이 벌었지만 불법적인 일을 한다는 죄책감에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안정적인 급여와 수당을 미끼로 취업준비생들을 고용,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업자들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 사이트를 통해 거래된 돈은 3조4,000억원에 달했고, 이들은 1,400억원을 챙겼다. 인천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등 혐의로 도박사이트 사장 김모(44)씨 등 16명을 구속하고 종업원 오씨 등 12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6일 밝혔다. 경찰은 국내에서 도주 중인 회장 이모(42)씨 등 15명은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추적하고 있다.

이들은 2013년 1월부터 지난 7월까지 1회당 최대 100만원까지 돈을 걸 수 있는 스포츠 도박 사이트 8개를 개설한 뒤 사이트별로 회원 2만~3만명을 모집, 운영해 약 1,400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 2월부터 수사에 착수해 140명을 국내외에서 차례로 검거했다. 이중에는 오씨처럼 구인공고를 보거나 소개를 받아 범행에 가담한 취업준비생 120명이 포함됐다. 7월 26일에는 필리핀에서 한국인 대상 범죄를 전담 처리하는 코리아데스크 한국 담당관이 현지 사무실을 급습, 종업원 17명을 붙잡기도 했다.

김씨 등은 도박 수익금을 환치기 업자를 통해 국내로 들여와 아파트나 상가를 구입하는데 썼다. 달아난 회장 이씨는 도박 사이트별로 사장, 이사, 실장, 관리자를 따로 두고 수익금과 종업원을 관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 차량과 주거지에서 현금 13억원을 압수하고 나머지 불법 수익금도 추적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국내에서 인터넷으로 도박 사이트를 불법 홍보해 회원을 모집하고 수익금의 30~40% 가량을 챙긴 업자(국내 총판)들이 각 사이트별로 3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이들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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