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ㆍ대량실업 땐 안 지켜도
제재 수단도 없어 선언적 의미
증세 없이 지출만 축소 회의적
정부가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45% 이내에서 관리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정건전화법 제정안을 25일 의결했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외형상 정부는 국가채무 수준과 매년 나라살림을 엄격히 정해진 범위 안에서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이를 지키지 않아도 제재할 수단이 없는데다, 예외 조항마저 많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증세 없이 지출 억제에만 초점을 맞추는 방식에도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열린 국무회의에서 재정건전화법 제정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재정건전화법은 범정부적인 재정건전성 관리의 제도적 틀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8월 입법예고 됐다. 국가채무는 GDP 대비 45% 이내에서, 매년 수입과 지출을 감안한 실질적 나라살림을 뜻하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GDP의 3% 이내에서 관리하는 것이 골자다. 정부는 또 법이 정한 상한선을 지키기 위해 재정이 투입되는 법안에는 반드시 재원조달 방안을 첨부토록 하는 페이고(Pay-go) 제도를 의무화하고, 2018년부터 5년마다 장기재정전망을 수립하도록 했다.
이번 법안의 배경엔 날로 급증하는 국가채무에 대한 위기 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2008년 28%에서 지난해 37.9%로 급증했으며, 올해는 40%대에 달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해도 정작 나랏빚을 제대로 억제할 수 있을지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각종 복지지출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국가채무 비율을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울뿐더러, 법을 지키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 조항이 없는 점이 우선 문제로 지적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예정된 복지 지출과 최근 조선ㆍ해운업 구조조정 등으로 인한 대량실업 등을 감안하면 채무비율이 45%를 넘는 데 4~5년 밖에 안 걸릴 것”이라며 “정부 스스로 경각심을 갖겠다는 선언적인 의미일 뿐, 실효성은 약하다”고 평가했다.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 변화 등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법적 비율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등의 예외조항이 많아 구속력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차라리 법상 허용 비율 한도를 높이고 예외를 엄격히 다스리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려면 지출만 통제하기 보다 증세를 통해 세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재정의 역할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세원 확충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세종=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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