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수원 삼성 선수단은 25일 오전 일찍 울산행 KTX 기차를 탔다. 자주 가던 길이지만 마음가짐이 남달랐다. 이번 원정에 올해 ‘농사’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원은 26일 오후 7시30분 울산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울산 현대와 FA컵 4강전을 치른다. 구단 운명이 걸린 한 판이다. 수원은 정규리그에서 벼랑 끝에 서있다. 2013년 스플릿시스템이 도입된 뒤 처음으로 하위그룹(7~12위)으로 떨어졌다. 클래식(1부) 12위는 챌린지(2부)로 자동 강등되고 11위는 챌린지 최종 2위와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한다. 수원은 승점 41로 10위인데 11위 인천 유나이티드(승점 39), 12위 수원FC(승점 36)와 격차가 크지 않다. ‘명가’로 자부해온 수원이‘우승’이 아닌 ‘강등’ 탈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현실이 낯설기만 하다.
토너먼트로 치러지는 FA컵은 정규리그 부진을 만회할 수 있는 탈출구다.
수원은 FA컵과 인연이 깊다. 지금까지 6번 FA컵 준결승에 진출해 모두 이겼다. 이 중 3번은 정상고지에 올랐다. 서정원(46) 수원 감독은 선수 시절인 2002년 FA컵 결승에서 수원 유니폼을 입고 포항 스틸러스를 상대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적이 있다. 지금까지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FA컵 정상에 선 사람은 황선홍(48ㆍ포항), 신태용(46ㆍ성남), 최용수(45ㆍ서울) 등이 있다. 최용수 감독은 1999년 득점왕을 차지했고 2015년 감독으로 우승컵을 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MVP 출신 우승 사령탑은 없다. 서 감독이 우승하면 최초다. 수원은 권창훈(22)의 발 끝에 기대를 건다.
권창훈은 올해 소속 팀과 국가대표, 올림픽대표를 오가는 강행군 속에 피로와 부상이 겹쳐 최근 부진했다. 하지만 지난 22일 성남FC와 정규리그 홈경기에서 그림 같은 왼발 프리킥 골을 넣는 등 1골 1도움으로 2-0 승리를 이끌었다. 수원 관계자는 “에이스는 위기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권창훈이 완전히 컨디션을 회복했다”고 기대를 보였다.
울산은 수원과 정반대로 지독한 ‘FA컵 징크스’에 시달리고 있다.
울산은 FA컵 준결승에만 9번 진출해 1998년 딱 한 번 승리하고 8번을 내리 패했다. 2011년에는 수원에 무릎을 꿇었다. 1998년 결승에서도 FC서울의 전신인 안양LG에 졌다. 윤정환(43) 울산 감독은 이번에 FA컵과 악연을 확실히 끊겠다는 각오다.
같은 시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서울과 부천FC1995의 또 다른 4강전도 관심이다.
20년 FA컵 역사에서 1부가 아닌 팀이 준결승에 진출한 적은 4차례 있었다. 2005년 당시 실업 팀인 울산현대미포조선과 인천한국철도가 준결승에 올랐고 미포조선은 준우승까지 차지했다. 2006년과 2008년에는 국민은행이 준결승 무대를 밟았지만 프로의 벽을 넘지 못했다. 승강제가 시작된 2013년 이후 챌린지 팀이 준결승까지 온 것은 부천이 최초다. 부천은 8강에서 강력한 우승후보 전북 현대를 누르는 최대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에 맞서는 서울 황선홍 감독은 ‘FA컵의 남자’다. 지금까지 감독으로 4번의 FA컵 준결승을 치러 3번을 이겼고 2012년과 2013년, 포항을 이끌고 2연패 금자탑을 쌓았다. 올해도 정상에 서면 사령탑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진 허정무(1997ㆍ2006ㆍ2007) 프로축구연맹 부총재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