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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으로 간 말 싸움

입력
2016.10.2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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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마클럽서 방목한 두 마리

다툼 끝 수말 큰 부상에 안락사

법원 “마주에 3500만원 배상”

2013년 10월, 경기 고양시의 한 승마장. 이곳에서 위탁 관리를 받던 암말이 곁에 있던 수말을 느닷없이 뒷발로 힘껏 걷어찼다. 벨기에산 윔블러드종인 승마용 수말은 비명을 토하며 비틀거렸다. 두 말을 목초지에 방목시키고 자리를 떠났던 말 관리사는 1시간 40분이 지나서야 수말의 이상 증세를 확인했다. 허벅지 뼈가 부러진 수말을 진단하던 수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에젤’이라 불린 수말은 암말 ‘에비앙’의 일격에 14세에 안락사되며 마주의 곁을 떠났다.

에젤과 에비앙의 마주인 중소기업 대표 S씨는 에젤에 월 150만원, 에비앙에 월 200만원 관리비를 내면서 한화그룹 산하 승마장 ‘로얄새들 승마클럽’에 위탁관리를 맡겼다. 로얄새들은 2014년 아시안게임 마장마술 단체전 금메달을 딴 선수가 훈련한 곳으로 알려진 고급 승마클럽이기도 하다. S씨는 승마교관 J씨에게 말들의 운동과 승마조련을 맡기며 월 150만~250만원도 지급했다.

그렇게 수년간 관리를 받던 에젤이 사고 10일 전부터 문제가 생겼다. 비타민 E 부족으로 체중이 급격히 감소한 것. 승마교관 J씨는 승마클럽 소속 말 관리사 A씨에게 에젤의 회복을 위해 방목을 요청했다. 단 에젤과 에비앙을 한꺼번에 풀지 말고 서로 다투지 않는지 상황을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말은 특성상 두 마리 이상 방목되면 서열다툼 등으로 사고 위험성이 있어 통상 한 마리씩 방목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마필 관리사 A씨는 다른 곳에는 이미 다른 말들이 방목돼 있자 두 말을 한 데 풀어놓고 10분 만에 자리를 떠났다. 이후 에비앙이 흥분 상태에서 에젤의 왼쪽 허벅지를 강타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마주는 승마장을 운영하는 한화 측과 교관 J씨를 상대로 “에젤 구입비 6,500만원과 훈련비 등 총 1억2,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마필 간 충돌을 방지할 의무를 소홀해 한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지만 한화 측은 “에젤에게 최상급 사료를 주고 정성 들여 관리했다”며 교관 J씨에게 책임을 돌렸다. J씨도 “방목 장소나 방법 등은 한화 측이 정한 일”이라며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마주의 손을 들어줬다. 1심은 한화 측 말 관리사가 말의 특성을 고려 않고 두 말을 함께 방목하고 지속적 관리감독을 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한화 측에 말 구입비 상당의 6,500만원을 배상하라고 주문했다. 2심인 서울고법은 지난 21일 “교관도 마주와의 계약에 따라 방목 현장에서 적절한 방법으로 직접 관리ㆍ감독할 의무가 있었는데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며 한화 측과 함께 J씨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배상액은 3,500만원으로 줄였다. 비슷한 나이의 경주마가 이 가격에 팔린 점 등이 고려됐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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