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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버려진 개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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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버려진 개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입력
2016.10.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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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개들의 문제를 다룬 신간을 출간했다. 생각보다 판매가 부진해서 출판사 블로그에 투덜대는 글을 올렸는데 사람들의 댓글을 읽고 이해가 됐다. 끔찍한 동물 관련 사건이 너무 많다보니 고통스러울 것 같은 책은 읽지 못하겠다고 했다. 길고양이 죽이겠다고 약을 놓는 동네는 왜 이리 많고, 길 잃은 개는 이웃에게 잡혀 먹고, 개를 학대하는 개농장 소유주들을 처벌하라고 서명을 해도 결과는 늘 허탈한 현실. 동물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절망과 체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칠레의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산문집 ‘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에는 검둥이와 치키토, 두 마리의 개가 나온다. 스페인의 휴양지 라 콘차의 길에서 사는 개 검둥이는 카페, 식당에서 사람들이 챙겨주는 밥을 먹고, 사랑받으며 산다. 사이클링 대회 선수들이 이 지역을 지날 때면 함께 달리기도 하고, 시위가 벌어지면 시위대의 제일 앞에 서서 행진한다. 지역의 유명인사였던 검둥이는 나이가 들어 가정집에 입양되었는데 목걸이를 했을 뿐 여전히 휴양지의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며 산다. 반면 치키토는 아르헨티나의 거리의 개다. 치키토가 고기가 든 자신의 봉지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고 한 남자가 치키토에게 발길질을 하고 고소한다. ‘치키토에게 자유를’이라는 청원 운동이 일어났지만 치키토는 결국 감옥에 갇혔고 그곳에서 죽었다.

삶의 질이 점점 악화되는 현실 속에서 사람들의 절망과 체념은 약자에 대한 저주와 증오로 이어진다. 게티이미지뱅크
삶의 질이 점점 악화되는 현실 속에서 사람들의 절망과 체념은 약자에 대한 저주와 증오로 이어진다. 게티이미지뱅크

책 내용 중에 개의 이야기에 집중했지만 저자는 이외에도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자본주의의 폭력성과 그로 인한 사람들의 피폐해짐에 주목한다. 삶의 질이 점점 악화되는 현실 속에서 사람들의 절망과 체념은 자신보다 약자에 대한 저주와 증오로 이어진다. 치키토가 그런 경우이고,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는 각종 약자 대상 범죄가 그럴 것이다. 저자는 함께 사는 반려견들에게 검둥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치키토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았다고 썼다. 슬픈 이야기를 외면하고 싶은 우리와 같은 마음이었겠지.

세풀베다는 피노체트 독재 정권에 맞서 저항하다가 망명했고 14년 만에 잠시 돌아온다. 그런데 독재정권 치하에서 살았던 조국의 아이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17세 세실리아는 꿈꾸는 게 두렵다고, 희망을 가져봤자 화만 난다고 말한다. 언제나 싱글벙글하던 15세 마르코스는 가난에 밀려 물건을 훔치다가 총에 맞아 죽는다. 저자는 마르코스를 ‘등에 묘비를 메고 태어난 운명이었나 보다’라고 적는다. 등에 묘비를 메고 태어난 운명. 동물을 비롯해 한국의 많은 약자가 이런 운명일까.

길고양이는 태어나 위협만 당하다가 약물을 먹고 죽고, 잠시 애완견으로 살던 개는 버려져 길에서 헤매다가 죽고, 식용견으로 태어난 개는 뜬장에서 태어나 평생 땅 한번 밝아보지 못하는 삶. 이런 뒤틀린 세상에 대한 분노가 체념과 절망이 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식용으로 판매하기 위해 평생을 개농장 속 뜬장에서 살아야 하는 개.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umane Society International) 캡처
식용으로 판매하기 위해 평생을 개농장 속 뜬장에서 살아야 하는 개.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umane Society International) 캡처

저자는 ‘잊지 말 것, 용서하지도 말 것’을 삶의 신념으로 갖고 사는데 이 책 또한 그 신념을 확인하는 여정이다. 그런데 이 말은 말 못하는 동물을 대신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유효하지 않을까. 사회적 약자, 비참하게 하루하루를 사는 생명, 즐거운 삶을 누릴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을 잊지 말고, 그들이 꿈꾸는 정의롭고 올바른 세상을 위해서 현실을 직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지만 가장 필요한 일이다.

책에는 독일 베를린의 기특한 개 에드워드도 소개된다. 공항에서 마약 탐지견으로 일하던 에드워드는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엄격하게 굴면서 후줄근하게 차려 입은 사람들에게는 관대해서 파면 당한다. 그 후 입양된 가정에서 뛰쳐나와 에드워드가 찾아간 곳은 빈 건물을 점유한 후 문화, 사회적인 공공의 목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곳에서 에드워드는 경찰이 사람들을 건물에서 내쫓기 위해서 들이닥칠 때면 귀신같이 알아채서 사람들에게 알려 그들을 도왔다.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섰던 에드워드를 기리는 노래도 있는데 그중 한 구절은 이렇다. ‘하늘이시여, 우리들의 자그마한 자유나마 옆에서 지켜 주던 에드워드를 보살펴 주소서.’

약자들의 작은 자유도 지켜주지도 못하는 세상, 생명의 존엄에 대한 철학이 없는 세상, 그래서 약자는 다 배제된 이 시대의 취약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것은 의지일까. 이 취약한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사람들의 의지. 그 의지를 실천으로 옮길 때 우리에게도 에드워드와 같은 털북숭이 친구들이 곁에서 작은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 루이스 세풀베다,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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